자벌레 / 노은정 자벌레 --- 노은정 --- 강변의 산책길 자벌레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두 팔꿈치를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며 오체투지하고 있다 힘들 것 같아 꽃가지로 일으켜 풀잎에 올려놓으니 몸을 동그랗게 말고서 나를 노려본다 # 군더더기 감 놔라 배 놔라 둥글어 간다 깎아 놔라 이.. 시조 & 시 2019.04.04
추락 / 유영호 추락 유영호 기온이 추락한다 나뭇잎이 추락한다 덩달아 통장잔고도 바닥이다 추락하는 것이 어디 그것 뿐인가 반등할 기미조차 없는 불경기에 자영업자 소득은 곤두박질치고 판매부진 수주절벽에 직장도 문을 닫아 청춘을 바친 일자리도 추락했다 직업을 찾아 떠도는 사람들 혼밥 혼.. 시조 & 시 2019.03.26
동백 / 冬柏 / 동네북 동백 / 冬柏 / 동네북 도로변 인도길을 걷다가 못볼것을 봤네 떨어진 동백꽃이 이리도 붉을 줄이야 저 뜨거운 기운에 화들짝 놀란 내 발목이 한방에 잡혀버렸네 그렇지 설 쇤지 며칠 안 지난 눈 나리던 역전 앞 뒷골목 밤에 켜진 홍등에 비치던 붉어진 얼굴의 그 아가씨가 네모난 유리갑속.. 시조 & 시 2019.03.08
엄마걱정 / 기형도 엄마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 시조 & 시 2019.02.17
처음처럼 / 황영이 처음처럼 ---- 황영이 ---- 세상 아름다운 이름들은 모두 소주병에 다 새겨져 있다 처음처럼 아침이슬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인데 이 예쁜 말을 우리 아이들 공책에 책가방에 마구 새겨 주고 싶은데 '웬 소주 이름' 이럴까봐 못하고 있다 요즘 가끔 누가 나에게 처음처럼 이러면 소주병만 생각.. 시조 & 시 2019.02.12
몸만 왔다 간다 / 유영호 몸만 왔다 간다 --- 유영호 --- 기차를 타고 간다 고향으로 간다 몸만 간다 부모님 앞에서 웃고 있지만 마음은 제각각 집에서 뒹굴며 TV를 보고 영화관에 가며 놀이공원에 간다 봉투에 넣기조차 부끄러운 몇 푼으로 자식의 도리 다 했다며 하루밤 자고 일수 찍 듯 왔다 간다 가는 차 꽁무니.. 시조 & 시 2019.02.02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들 / 박아저씨 흐르는 물은 다시 돌아 오지 않고 떠도는 구름은 다시 볼 수 없네 늙은이의 머리 위에 내린 흰 눈은 봄바람이 불어와도 녹지를 않고 봄은 오고 가고 하건만 늙음은 한번 오면 갈 줄을 모르네 봄이 오면 풀은 절로 나건만 젊음은 붙잡아도 달아나네 꽃은 다시 필 날이 있어도 사람은 다시 .. 시조 & 시 2019.01.30
사랑과 증오 / 안희선 사랑과 증오 가벼운 사랑이라 할지라도 그런 남을 탓하지 말라 그것은 무거운 증오보다 아름다울 수 있으니 내 무거운 사랑이라고 남에게 자랑하지 말라 그것은 가벼운 증오보다 더 쉽게 가라앉을 수 있으니 - 안희선 시조 & 시 2019.01.27
내 방(房) / 채정화 내 방(房) / 채정화 오늘도 우유를 마신 하늘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안부를 전해온다 이따금 지나가는 구름이 간간 미소 짓는다 마주 보이는 하얀 침묵에 잠긴 산이 손을 흔든다 흔들리는 나뭇가지로, 나른한 햇살 베란다에 한참 몸을 눕히고 하품하며 쉬어가면 곧이어 새들 날갯짓 부산하.. 시조 & 시 2019.01.19
친구야 / 안희선 친구야 / 안희선 친구야, 이 세상이 너무 차갑고 삭막하구나 고단한 발걸음만 잔뜩 쌓인 낡은 거리에는 더 이상 따뜻한 웃음소리도 없어, 서로에게 차가운 심장을 드러내 보이는 경계(警戒)만 사방에 번뜩이고 사람들의 삶은 마치 삶은 계란 같아서, 온통 푸석하기만 해 그래서 너는, 나에.. 시조 & 시 2018.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