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시 193

아들의 운동화 / 유상옥

아들의 운동화 / 유상옥 비오는 날 교문에서 고삼 아들 기다리던 김씨 아저씨 아들 운동화 젖는다고 자기 슬리퍼 신기고 아들 운동화는 품에 안고 간다 우산은 아들 위에 있고 아버지는 엇비슷하게 걷는다 맨발로 걷는 아버지는 아들 운동화를 아기 안듯 안고 간다 장화 한 켤레 사주지 못한 죄인이 땅 밟을 자격 없다고 투덜대는데 아들은 아빠 어깨를 껴안는다 질퍽거리는 거리를 두 사람이 한 몸처럼 날고 있다 둘은 운동화 한 켤레 타고 하늘을 나른다 집 한 채 없고 변변한 직장 없어도 비행기 한 대쯤 있다 꿈 조종사 운전하고 항해지도 없어도 갈 곳은 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쉬지 않고 날라서 꿈이 닿은 곳이면 내릴 것이다 운동화 비행기 타고 멀리 멀리 날 것이다 西北美 문인협회 詩부문으로 등단 현재 美 오리건 Or..

시조 & 시 2021.05.08

나 죽은 후에 / 안희선

나 죽은 후에 기억하지 마세요, 나를 그대가 헤쳐나가야 할, 현실만으로도 벅찬 것을 그래도 굳이 기억해야 한다면, 다만 그대 입가에 고요한 미소로 내가 기억되기를 내가 까만 어둠 속에서 그대를 기억하며, 미소짓듯이 삶이 끝난 뒤, 가느다란 불꽃 주위의 추억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겠지만, 내 가슴엔 너무 소중한 것들 그래서, 슬픔이 될 수 없는 나의 미소이기에 그대는 아파하지 말기를 나, 이제 죽은 후에 비로소 평안하니까 - 안희선

시조 & 시 2021.05.05

One Art (한 가지 기술) / Elizabeth Bishop

One Art (한 가지 기술) / Elizabeth Bishop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so many things seem filled with the intent to be lost that their loss is no disaster. 잃는 기술을 숙달하긴 어렵지 않다. 많은 것들이 상실의 각오를 하고 있는 듯하니 그것들을 잃는다 하여 재앙은 아니다. Lose something every day. Accept the fluster of lost door keys, t he hour badly spent.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매일 뭔가 잃도록 하라. 열쇠를 잃거나 시간을 허비해도 그 낭패감을 잘 견디..

시조 & 시 2021.01.02

신동호 / 진중권 / 빈 꽃밭 주고받기

'빈 꽃밭' 詩로 반격한 靑비서관…진중권의 답시는 '빈 똥밭' ------------------------------------------------------------------------------------------- ​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책임지는 신동호 청와대 연설비서관과, 문재인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1일 기형도 시인의 ‘빈 집’을 변용한 시로 공방을 벌였다. ‘빈 집’은 기 시인이 사망하기 직전에 발표한 시로 사랑의 상실을 다루고 있다. 2020.06.11. - 중앙일보 - ------------------------------------------------------------------------------------------------------..

시조 & 시 2020.12.25

그대의 들 / 강은교

그대의 들 / 강은교 '왜 나는 조그마한 일로 분개하는가'로 시작되는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하네 하찮은 것들의 피비린내여 하찮은 것들의 위대함이여 평화여 밥알을 흘리곤 밥알을 하나씩 줍듯이 먼지를 흘리곤 먼지를 하나씩 줍듯이 핏방울 하나 하나 그대의 들에선 조심히 주워야 하네 파리처럼 죽는 자에게 영광이 있기를! 민들레처럼 시드는 자에게 평화있기를! 그리고 중얼거려야 하네 사랑에 가득 차서 그대의 들에 울려야 하네 '모래야 나는 얼마만큼 적으냐' 대신 모래야 우리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대신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라고 세계의 몸부림들은 얼마나 작으냐 작으냐, 라고 1945년 함남 흥원 출생 연세대학교 국문과 및 同대학원 졸업 1968년 사..

시조 & 시 2020.09.27

콩이 두 쪽인 까닭은 / 유영호

콩이 두 쪽인 까닭은 --- 유영호 --- 짜장면으로 끼니를 때워도 커피만큼은 분위기 좋은 곳에서 비싸게 주고 마신다는 된장녀 이야기가 목구멍에 걸린 적이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커피가격을 알게 되던 날 삼백 원짜리에 길들여진 내입은 온 종일 텁텁했다 두 입의 행복지수는 지불한 돈만큼 차이가 날까 열 살도 안 된 아이부터 온 식구가 원두수확에 매달려서 받는 몇 천원과 그 일가족의 한 달 양식보다 비싼 커피 한 잔의 값 농부와 상인이 똑같이 나누라고 신이 정해준 비율인 두 쪽 열매도 힘 있는 자가 나누면 99대1. #군더더기 자본주의 사회는 가진 자들의 힘이 신의 힘보다 더 강합니다. 아침에 커피 한잔을 마시며 얼마전에 책을 보고 알게된 제3세계 국가의 가난한 커피 노동자들을 생각했습니다. 일가족이 하..

시조 & 시 2020.08.23

가족 / 안희선

가족 안희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늦은 저녁의 어둔 모습으로 귀가해서 습관처럼 식구들의 안부를 확인하며 밥을 먹고 아무 생각 없이 TV나 밤 늦도록 보고나서 피곤함을 못이겨 잠 자리에 들려는, 나를 발견했다 가족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도 서서히 자리잡는, 이 야릇한 서먹함 자꾸 말이 줄어드는 내 모습이 왠지 나조차 낯설어, 뒤척이는 밤 힘겹고 고단한 삶일수록, 날마다 내가 사랑이어야 하는데 나는 밤을 닮아, 더욱 깜깜해진다

시조 & 시 2020.07.17

마음 / 박경리

마음 박경리 마음이 바르게 서면 세상이 다 보인다 빨아서 풀먹인 모시 적삼같이 사물이 싱그럽다 마음이 욕망으로 일그러졌을 때 진실은 눈멀고 해와 달이 없는 벌판 세상은 캄캄해질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욕망 무간지옥이 따로 있는가 권세와 명리와 재물을 좇는 자 세상은 그래서 피비린내가 난다 #군더더기 심란한 마음을 달래며 박경리님의 유고시집에서 아침을 여는 시를 선택 했습니다. "마음이 욕망으로 일그러졌을 때 진실은 눈멀고 해와 달이 없는 벌판 세상은 캄캄해질 것이다 " 우리는 과연 욕망에 끌려 가지는 않는지 ....

시조 & 시 2020.06.23

입담이 헛배를 불리다 / 유영호

입담이 헛배를 불리다 유영호 시장기에 떠밀려 식당에 들어선다 바보상자에 넋을 빼앗겼던 여자가 화들짝 놀라 말까지 더듬더니 주문도 하기 전에 연속극 줄거리를 올려 상을 차린다 시집간 딸부터 집나간 서방까지 덩치만큼 푸짐해서 상다리가 위험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만 입담에 미리 배가 불러 선뜻 손 가는 반찬이 없다 이러고도 식당간판을 내걸다니 그 용기가 참으로 가상하다 먹을 것에 대해서만은 누구보다 관대하다 여겼는데 숟가락을 놓고 일어서려니 지갑도 나오기 싫어 발버둥친다 문을 나서자마자 와락 안기는 허기. #군더더기 여행은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도 있지만 그 지역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돈을 주고 먹으면서도 정말 맛없는 음식을 먹은 기억은 없나요? 몇년..

시조 & 시 2020.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