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발자국
김경성
키 큰 느티나무의 몸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바람을 보았다
나뭇잎의 낱장마다 속속들이
소소속 바람이 박히는 소리, 그 소리
나무의 몸속으로 들어가 나이테의 행간을 휘돌아서
쏴 와와와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바람의 신발
한 짝 두 짝 주워서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지문처럼 번져 있는 바람의 무늬 손금 닮았다
느티나무의 몸속에 남아있는 바람, 잎 젖혀가며 내게로 와서
발자국을 찍어대고
나는 기왓장 틈 아슬아슬하게 꽃을 피운 씀바귀처럼
절집 마당에 오래 앉아
발자국에 고이는 바람의 말을 읽었다
무언가 간절히 그리워지는 해질 무렵,
몸과 마음을 열어놓으니
몸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
그대 마음인 듯 따뜻해서
흩어져 있는 바람의 발자국 가만가만 만지며 산길 걸었다
내 몸 스치는 곳마다
숲 떨림의 소리 가득했다
#군더더기
수채화 같은 시를 한 편 읽은 기분입니다.
묵언 수행을 하는 어느 스님이
만행 길을 나섰다 만난 듯한 그런 시.
왠지 슬픈 듯,
그러나 이내 따뜻해 지는 그런 시.
무언가 간절히 그리워지는 날
내 몸을 스치는 것은 모두 당신이라고 말해주는 시.
하여, 오늘은 몸과 마음을 열어놓고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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