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시

민들레 / 김상미

낙동대로263 2019. 6. 4. 23:58


민들레

             김상미



너에게 꼭 한마디만,

알아듣지 못할 것 뻔히 알면서도,

눈에 어려 노란 꽃,

외로워서 노란,

너에게 꼭 한마디만,

북한산도 북악산도 인왕산도 아닌, 골목길 처마 밑에 저 혼자 피어 있는 꽃,

다음날 그 다음날 찾아가 보면, 어느새 제 몸 다 태워 가벼운 흰 재로 날아다니는, 너에게 꼭 한마디만,

나도 그렇게 일생에 꼭 한번 재 같은 사랑을, 문법도 부호도 필요없는, 세상이 잊은 듯한 사랑을, 태우다 태우다 하얀 재 되어 오래된 첨탑이나 고요한 새 잔등에 내려앉고 싶어, 온몸 슬픔으로 가득 차 지상에 머물기 힘들 때, 그렇게 천의 밤과 천의 낮 말없이 깨우며 피어나 말없이 지는, 예쁜 노란 별, 어느날 문득 내가 잃어버린 그리움의 꿀맛 같은, 너에게 꼭 한마디만




#군더더기


민들레는 수백 개의 갓털이 달린 낱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쉼표와 쉼표 사이 이러한 깃털의 이미지가 마음에 흩날립니다.

그 한 표현이 어디로 날아가 앉을 지에 따라 제각각 소통이라는 꽃도 피겠지요.

이 시의 포인트는 민들레 씨앗을 재로 본 직관에 있다고 할 것인데, 활활 타올랐던 사랑이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깨우며 피어나 말없이 지는 존재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았던 작은 민들레는 누구의 사랑이었던 것일까요, 너에게 꼭 한마디만이 자꾸만 이명(耳鳴)으로 남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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