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시

고래는 울지 않는다 / 마경덕

낙동대로263 2019. 6. 1. 14:11


고래는 울지 않는다

 

                    마경덕

 

연기가 자욱한 돼지곱창집
삼삼오오 둘러앉은 사내들
지글지글 석쇠의 곱창처럼 달아올라
술잔을 부딪친다


앞니 빠진 김가, 고기 한 점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고물상 최가 안주 없이 연신 술잔을 기울인다
이 술집 저 술집 떠돌다가
청계천 물살에 떠밀려 온 술고래들
어느 포경선이 던진 작살에 맞았을까
쩍쩍 갈라진 등이 보인다


상처를 감추며 허풍을 떠는 제일부동산 강가
아무도 믿지 않는 얘기
허공으로 뻥뻥 쏘아 올린다


물가로 밀려난 고래들,돌아갈 수 없는
푸른 바다를 끌어 와 무릎에 앉힌다
새벽이 오면 저 외로운 고래들
하나 둘, 불빛을 찾아 떠날 것이다


파도를 헤치고 무사히 섬에 닿을 수 있을지...
바다엔 안개가 자욱하다
스크류처럼 씽씽 곱창집 환풍기 돌아간다



 

#군더더기


우리는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을 일컬어 술고래라 합니다.

시인은 이 시대의 가장을 술고래로 치환시켜 사내들의 고단한 삶을,

그 내면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군요.

술고래와 안개,

곱창집과 환풍기가 자연스럽게 잇닿으며

가장들의 쓸쓸한 저녁 풍경을 보며 마음이 짠해지는군요.

부디 파도를 헤치고 가는 저 사내들이 무사히 섬에 닿기를,

이 시인이 오래도록 좋은 시를 생산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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