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시

반지하 생활자의 아이 / 윤지영

낙동대로263 2019. 4. 12. 22:58


반지하 생활자의 아이

                       - - - - 윤지영 - - - -

반지하, 아침은 늘 반쯤만 찾아왔다
반쯤 투명한 햇살이 창턱을 반만 넘어들고,

창가의 제라늄이 반만 꽃잎을 벌리는 아침, 반쯤 벌어진 꽃잎 사이로 고물장수의 발만 보였다.

아침밥을 반도 먹기 전에 덫에 걸린 쥐새끼가 반쯤 열린 부엌문 뒤에서 단발마의 비명을 흘리는 아침의 연속이었다.
반지하의 시계는 언제나 반 박자씩 늦게 갔고, 주인집의 시계는 반 박자씩 앞서 갔다.

시계바늘과 시계바늘이 만든 공터에서 반지하의 아이가 반쯤 졸다 반쯤 깨는 사이 저무는 반나절, 누렇게 뜬 어느 봄날

어느덧
반지하에도 밤이
밤만은 온전히 찾아오곤 했다.

반쯤 흐릿한 형광등을 켜도 바퀴벌레가
도망가지 않는 방이었다.




#군더더기


흔히 현대를 인간 소외의 시대라고 합니다.

근대문명은 우리 삶에 편리함을 제공하였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도구화, 관계의 단절, 자신으로부터의 소외 등 수 많은 부조리를 감수해야 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가난한 이웃들은 이 사회 속에서 주체가 아니라 타인으로 전락한 채 건강한 생명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 시는 이러한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현대인의 소통 단절과 그로 인한 슬픔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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