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이야기

여행 ... 순수이성비판

낙동대로263 2012. 8. 27. 21:33

 

 

--------------------------------------------

 

우리가 존재하면서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고 하는 이 공간은 우리가 느끼는 유일한 세계이며,,, 

더 이상의 것은 절대로 알 수가 없고, 우리의 경험적 한계인 공간을 넘어선 곳의 일은 결코 이해되지가 않는다는 것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요지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겠지요.

 

이 순수이성비판에 대한 개념을 풀이해 보겠습니다... 

 

-----------------------------------------

 

사실, 우주창조니, 시간이니, 의식이니, 자아니 하는 것은 우리의 경험적 한계를 넘어선 장소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인간의 한계인,,,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이 공간을 넘어선 곳의 일이라서 ,,,  우주니 뭐니 하는 존재에 대한 이해는,,,  불명확한 사실로서의 가정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여기까지는 이해되시죠 ?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보다 더 높은 상위개념이라는 것입니다...   그 상위개념이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요 ?

 

이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상위개념의 범위를 알아보고 넘어갑시다.

 

세계 ; 인간적이며 인간중심의 개념(감성 위주)

우주 ; 냉철한 경험과 관찰에 의한 과학적 개념(오성 위주)

자연 ; 모든 것의 본래의 모습이라는 개념(이성 위주)

 

세계라는 어휘는 인간 세상만을 지칭하지는 않지만 거의 인간과 관련한 일에만 사용되며,,,

우주라는 어휘는 시공간과 물질과 관련한 의미로서 경험에 기초가 있다.

또한, 자연은 '스스로 연유한...' 이라는 뜻과도 같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즉, 인간의 경험한계를 초월한 비물질적인 개념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런 단어적인 개념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즉,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인정하고 본다면,,,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차원은 3차원의 공간뿐이며 그나마도 시간이라는 변화하는 양상??  환경?? 속에서만 감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아무것도 감지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 인간은 비록 감지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라는 경로를 통하지 않으면 전혀 우리의 감지능력을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 되고,,,  시간의 바탕 위에서야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됩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기준으로 우주창조를 생각해 보자.

 

앞 서 말한 것 처럼 ,,,  우주창조라는 사건이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경험 밖의 사건이기에 가정만을 할 뿐이며 가정을 하고 나서라면 그 창조의 순간,,   시점이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 ?     

즉,,  우주창조가 시간의 범위를 벗어나서 일어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 우주창조가 있었다면 분명한 시간적 차이가 있는 것이다.

창조前과 창조後 라는 전후관계가 성립되고 시간의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번개같은 순간이라도 시간차이는 있지 않는가 말이다.

 

즉, 시간은 우주창조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주창조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우주창조의 상위개념이 시간인 것입니다.

 

'우주창조' 라는 사건이 경험 밖의 일이고, 워낙 엄청난 일이라서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기에 판단에 자신이 없을 뿐이지 ,,, 

전 우주의 차원에서라면 그것도 하나의 사건일 뿐인 것이니 간단히 생각하면 시간이 우선적 조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그 다음.............

공간이라는 개념을 기준으로 한 우주창조를 상상해 보자.

 

우주창조가 열역학의 법칙을 지켰다면 우주창조에는 반드시 어떤 에너지가 필요하게 된다.

모든 사건은 동력원이 없이 이루어 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며 이런 엄청난 우주가 에너지 없이 갑자기 생겨 났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에너지가 하느님의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 것은 열역학 때문이며 그게 가능하려면 에너지와 공간은 완전히 다른 별개의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열역학에 따라 일방통행의 경로를 가진다면 에너지가 공간으로 변환되고,,, 또 공간이 에너지로 변환되는 양상이므로 이게 과연 '창조' 라고 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창조' 라는 것은 그야말로 無에서 有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   그게 무엇이든지, 이미 있는 존재가 필요충분조건에 의해 변환하는 것은 창조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무엇인가가 변환되어 우주가 나타났다면 그건 창조가 아니라 에너지의 변환이지요...

 

그리고, 에너지의 변환이라면,,, 공간 개념과는 전혀 별개의 개념인 가상개념이 필요로 하게 되고,,,

이렇게 가상공간 내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  

공간의 한계 내에서 존재하는 인간의 경험으로서는 절대로 절대로 파악할 수가 없는 이성의 한계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논의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칸트가 말한 순수이성비판입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  별 게 아니고 우주창조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논리학적 대상으로 한 것이지요 .

 

더구나 우주창조가 에너지와 공간과의 교환이 아닌,,  그 어떤 다른 방식으로 일어난 사건이라면,,, 또는 우주가 그렇게 만들어 졌다면,,,, 그 에너지는 원인없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으므로 인과론에 의한 인과법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니 절대적 연역을 거슬리게 되어 존재할 수가 없는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주창조는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주는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 같이 스스로 원래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며,,,

변화는 시간의 영역에서도 공간과 같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원래' 거기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주가 '원래' 거기에 있었다면 ,,,   '영원' 이라는 단어가 떠 오를것입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가 ? 하는 것이 밝혀야할 과제인 것입니다.

 

영원하다면 그것은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인가요?

시작과 끝이 있다면 그건 영원이 아닙니다. 분명히 한계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시작이나 끝 중, 어느 하나만 없다는 것도 상대개념이 없는 절대개념은 없으므로....  즉, 상대개념의 한 쪽이 사라지면 다른 한쪽도 존재가 불가능한 것이니 '영원' 하려면 시작도 끝도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우주창조 역시나 마찬가지이지요.

우주의 종말이 그 상대개념이 아니겠습니까 ?

분명히 창조(시작) 했으니 종말(끝)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런 유한성을 가진 우주는 '영원' 한 것일까요 ?

따라서 우주는 비록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라 하더라도 '창조' 되었다면 그것은 언젠가는 '종말' 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우주를 신이 창조했다고 하더라도 ,,,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논리를 대입한다면, 시작과 끝을 가지고 있게 되므로 시간에 종속된 것이지요.

그러면,,  이 시간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요?

이것도 원래 거기에 있었단 말인가요 ?

거기 거기 하는데 거기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요......

 

--------------------------------------------------

 

이런 방식의 접근은 일반적 의미로서의 철학적인 접근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논리적 접근이지요...

 

다음에는 물리학적인 접근을 해 보겠습니다.

물리학적 접근은 철학적인 접근과는 또 좀 다른 면이 있습니다.

논리의 정연함은 덜 할수가 있고 일반생활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  냉정하고 과학적이며 관찰과 증거에 기초한 이야기이니 재미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