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기름주유소
고경숙
얼었다 녹은 봄날 산벼랑
백설기처럼 푸슬거리는
산 옆구리를 쥐고 달린다
포장을 마다하고
일부러 견고하지 않은 길은
덜컹이며 바람을 타다
오르막에서 멈춘다
계기판에 불이 들어온 지 한참,
고갯마루 작은 주유소엔
대형 탱크로리에서 꽃무더기를
옮겨 담고 있다
고객님 얼마나 넣어드릴까요?
나는
L당 가격표를 보는 대신 꽃향기를 맡아본다
들꽃유로 가득이요
서둘러 주유기를 꽂고 뒤차로 간다
내 뒤 봉고는 콩기름을 주문한다
주유원이 탁탁 엉덩이를 치면
꽃향기를 내뿜으며 부릉거린다
카드전표로 가져온 꽝꽝나뭇가지에
손도장 꾹 눌러주고
출발!
손님, 내리막길은 무동력이구요,
봄은 비과세입니다.
# 군더더기
신자유주의시대가 도래하면서 정유사도 자유 경쟁을 하는 요즘, 운전자들은 가격과 서비스 좋은 곳을 찾아 기름을 넣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자연이 주는 깨끗한 공기만큼 더 유익한 기름이 있을까요?
저 들과 산의 꽃과 나무가 저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우리에게 상쾌함을 건네주듯, 이 시 또한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전달해 주는군요.
한마디로, 에너지 사용량이 많아질수록 생활은 윤택해지지만 이에 대한 부작용은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직결된다는 것.
이 시는 물질문명의 폐해를 뒤집어 줌으로서 환경과 생태에 대한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군요.
자동차 배기가스조차 <꽃향기를 내뿜으며 부릉거린다>는 발상, 자연의 순리와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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