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시

빈 항아리 1 / 홍윤숙

낙동대로263 2019. 10. 24. 23:31



빈 항아리 1
 
                              홍윤숙


 
비어 있는 항아리를 보면
무엇이든 그 속에 담아두고 싶어진다
꽃이 아니라도 두루마리 종이든 막대기든
긴 항아리는 긴 모습의
둥근 항아리는 둥근 모습의
모없이 부드럽고 향기로운
생각 하나씩을 담아두고 싶어진다
바람 불고 가랑잎 지는 가을이 오니
빈 항아리는 비어 있는 속이 더욱 출렁거려
담아둘 꽃 한송이 그리다가
스스로 한묶음의 꽃이 된다
누군가 저처럼 비어서 출렁거리는
이 세상 어둡고 깊은 가슴을 찾아
그 가슴의 심장이 되고 싶어진다
빈 항아리는 비어서 충만한
샘이 된다.




# 군더더기


무엇이든 채우려 하는 것이 범인들의 어쩔 수 없는 습성인가 봅니다.

제법 삶에 부대끼면서 살아 본 사람들은 시인의 말처럼 빈 항아리 하나쯤 가지고 싶을 겁니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나 탐욕 말고, 비어서 충만한 빈 항아리 말입니다.

그냥 내 모양대로, 가끔씩 모없이 부드럽고 향기로워질 때만 하나씩을 담아 둘 그런 항아리! 아! 언제쯤 가지게 될까요?

어쩌면 영영...
그나저나 가을입니다. 
이 화려한 계절을 어쩌란 말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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