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시

늙은 조개 / 김순아

낙동대로263 2019. 8. 10. 07:34


늙은 조개
                      김순아
 
찬거리로 사다 도마 위에 올려놓은 조개 한 마리
죽은 듯 입을 앙다물고 있다
세월의 무늬가 짙게 새겨진 노인처럼
칼끝으로 위협해도 꿈쩍 않는다


흔히 입이 벌어지지 않는 것은 죽은 조개라고 하지만
실은 입을 열면 혼자 삭여온 말들 거침없이 쏟아질까봐
늙은 몸 방치하고 소식조차 두절한 자식들
그 삶에 폐 끼치고 그 가슴에 비수되어 꽂힐까봐
생의 마지막 여력으로 이를 꽉 깨물고 있는 것이다


입안에 오랫동안 가둬두어 굳어진 혀끝이
입술을 열고 나와 자식, 손자 핥고 싶은 맘 왜 없었을까만
가슴에 끝없이 고여 오는 서러운 말들
물꼬 터진 듯 쏟아내고 싶은 맘 왜 없었을까만
입안에 고이는 침 삼키며
세월이 푹푹 삶아도 끝내 입 열지 않는 늙은 조개


저 앙다문 입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왜 침묵하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은 이미 죽은 조개니 쓸모없는 조개니 해온 것이다
 


#군더더기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다 할수 없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차라리 입을 앙다물고 사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

말 한마디 잘 못해서 패가망신 하고 이 더운 날 교도소에 가는 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말은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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