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시

파라다이스 폐차장 / 김왕노

낙동대로263 2018. 6. 24. 06:16


 

파라다이스 폐차장 / 김왕노


폐차들
시루떡 같이 겹겹이 쌓여 있다.
질주의 끝이 이곳이라는 것을
우리는 몰랐다는 것을
온몸으로 항변하다 벌겋게 녹슬기도 하고

다 이제 해체되기를 기다린다.
늘 죽음 쪽으로 쏠릴 때마다
균형을 잡아 달렸는데
기어코 도달한 곳이 차의 거대한 무덤
압착기에 전신이 짜부라지는
무시무시한 순간이 기다리는 곳

과속을 할 때마다 헐떡이며
절정에 도달했을 때
그때쯤 그만두어야 하는데
따지면 무얼 그만두어야 하는지
마땅히 떠오르는 것도 없었는데
결국은 속도의 끝이 정지라는 것
늘 달렸지만 정지 쪽으로 살이 당겨지는 것
우리가 가진 관성이라는 것도
죽음에게로 기울어가려는 것

길을 빗나간 차든지
곧장 떠난 차든지
결국은 이곳에서
만날 운명이었다는 것을
이곳에 모인 폐차들
어이없이 서로의
찌그러진 몰골을 바라본다.

정신없이 달릴 때
서로 알아봤어야 했다면서
추월하여 뒤꽁무니를 보일 때
이미 결론이 나 있었던 것이라며
폐차들 참회의 모습으로
지금은 차디찬 비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다.



1992 대구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
2003 한국해양문학대상 수상
2006 제7회 박인환 문학상 수상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말달리자 아버지』
글발 동인


----------------------------

<감상 & 생각>

 


폐차장에서 덧없는 욕망의 잔해殘骸를 본다

車의 一生과 사람의 일생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평생토록,
욕망의 엔진 Engine으로 질주했던 삶

이제, 최후의 정지신호 앞에서 멈추었다

시인은 왜, <파라다이스 폐차장>이라 했을까

모든 소망의 시간이 정지된 곳에는
더 이상, <지옥 같은 절망>도 없기 때문일까

그 정지된 시간 속에서...

내가 평생 헛된 갈망으로 질주했던 것만큼
지녀야 할 참회慙悔의 몫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 희선,




'시조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왜 -- 박범신  (0) 2018.06.25
황사는 아직 그대로다 -- 유영호  (0) 2018.06.25
낙옆과 바람  (0) 2018.06.23
서정만 -- 이제 부모는 가진게 없다  (0) 2018.06.16
請婚 --- 조기영  (0) 2018.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