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사표 / 안희선
제 아무리 시라는 옷걸이에 그럴듯하게 글을 걸쳤다고 해도...
시라는 이름으로 은연중(隱然中) 시인 자신을 돋보이려 하는 글
일부러 독자로 하여금 시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글
시인 자신도 자신의 글이 무얼 말하는지 도통, 모르는 채 쓰는 글
시로서 독자에게 제공되는 보편적 감동을 전혀 담지하지 못하는 글
시인 자신의 신세 타령, 혹은 푸념에 불과한 글
시인 자신의 입장만을 앞세우는, 종교판의 설교 같은 글
인생에 관한 섣부른 가르침의 교훈, 혹은 잠언(箴言) 같은 글
아무런 비판없는, 기사(News) 같은 글
생활잡기(雜記), 혹은 생활일기(日記)의 수준에 머무는 글
헛헛한 그리움 내지 사랑타령에 불과한 글
시인 자신에게나 독자에게 보다 성숙한 삶의 계기가 되지 못하는 글
시와 시인,독자 혹은 평자(評者) 상호간의 신뢰를 파괴하는 글
총합(總合)해 말하자면,
한 마디로 시라는 이름으로 아예 없어도 되는 글이란
몇 가지 생각
그런데, 내 글의 대부분이 그러한 범주(範疇)의 것이어서...
내 마음대로 시인사표를 쓴다
(임명장을 받은 적도 없고, 수리해 줄 곳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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