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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니 ,,,
저절로 안타까운 한 숨이 나오고 ,,,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 번 쳐다보게 되더라 ......
그리고 ,,,
도대체 아무 할 말이 없어지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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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님이 이시영 지음
용산 역전 늦은 밤거리
내 팔을 끌다 화들짝 손을 놓고 사라진 여인
운동회 때마다 동네 대항 릴레이에서 늘 일등을 하여 밥솥을 타던
정님이 누나가 아닐는지 몰라
이마의 흉터를 가린 긴 머리, 날랜 발
학교도 못 다녔으면서
운동회 때만 되면 나보다 더 좋아라 좋아라
머슴 만득이 지게에서 점심을 빼앗아 이고 달려오던 누나
수수밭을 매다가도 새를 보다가도 나만 보면
흙 묻은 손으로 달려와 청색 책보를
단단히 동여매 주던 소녀
콩깍지를 털어 주며 맛있니 맛있니
하늘을 보고 웃던 하이얀 목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지만
슬프지 않다고 잡았던 메뚜기를 날리며 말했다.
어느 해 봄엔 높은 산으로 나물 캐러 갔다가
산뱀에 허벅지를 물려 이웃 처녀들에게 업혀 와서도
머리맡으로 내 손을 찾아 산다래를 쥐여주더니
왜 가 버렸는지 몰라
목화를 따고 물레를 잣고
여름밤이 오면 하얀 무릎 위에
정성껏 삼을 삼더니
동지 섣달 긴긴 밤 베틀에 고개 숙여
달그랑잘그랑 무명을 잘도 짜더니
왜 바람처럼 가 버렸는지 몰라
빈 정지 문 열면 서글서글한 눈망울로
이내 달려 나올 것만 같더니
한 번 가 왜 다시 오지 않았는지 몰라
식모 산다는 소문도 들렸고
방직 공장에 취직했다는 말도 들렸고
영등포 색시집에서 누나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끝내 대답이 없었다.
용산 역전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던 내 팔 붙잡다
날랜 발, 밤거리로 사라진 여인
후꾸도 이시영
장사나 잘 되는지 몰라
흑석동 종점 주택은행 담을 낀 좌판에는 시푸른 사과들
어린애를 업고 넋나간 사람처럼 물끄러미 모자를 쓰고 서 있는 사내
어릴 적 우리 집서 글 배우며 꼴머슴 살던 후꾸도가 아닐는지 몰라
천자문을 더듬거린다고 아버지에게 야단 맞은 날은
내 손목을 가만히 쥐고 쇠죽솥 가로 가
천자보다 좋은 숯불에 참새를 구워주며
멀뚱멀뚱 착한 눈을 들어
소처럼 손등으로 웃던 소년
못줄을 잘 못 잡았다고
보리밭에 송아지를 떼어놓고 왔다고
남의 집 제삿밤에 단자를 갔다고
사랑이 시끄럽게 꾸중을 들은 식전아침에도
말없이 낫을 갈고 풀숲을 헤쳐
꼴망태 위에 가득 이슬 젖은 게들을 걷어와
슬그머니 정지문에 들이밀며 웃던 손
만벌매기가 끝나면
동네 일꾼들이 올린 새들이를 타고 앉아
상머슴 뒤에서 함박 웃던 큰 입
새경을 타면 고무신을 사 신고
읍내 장터로 서커스를 한판 보러 가겠다고 하더니
갑자기 서울서 온 형이
사년 동안 모아둔 새경을 다 팔아갔다고 하며
그믐날 확독에서 떡을 치는 어깨엔
힘이 빠져 있었다
그날 밤 어머니가 꾸려준 옷보따리를 들고
주춤주춤 집을 떠난 후꾸도는
정이월이 가고 삼짇날이 가도 오지 않았다
장사나 잘 되는지 몰라
천자문은 다 외웠는지 몰라
칭얼대는 네댓살자리 계집애를 업고
하염없이 좌판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사내
그리움에 언뜻 다가서려고 하면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자를 눌러쓰고
이내 좌판에 달라붙어
사과를 뒤적거리는 사내
하차(下車) 김원길
낯선 도시의 역광장
가등(街燈) 아래 서면
손가방 든 내가 우습구나.
길은 팔방으로 뻗어
여객은 뿔뿔이 흩어져 가고
나도 주착주착
어디라 갈 곳이나 있다는 듯이...
저기 저 길을 건너가면
어린 내 웃음과 행복이 피던 골목,
슬픔과 눈물로 떠나온 집.
이 저녁엔 어느 누가
내 손때 묻은 문을 닫고 앉아
한 상 가득 웃음꽃을 피우고 있을까?
팔방으로 뻗어나간 휘황한 길로
사람들은 분주히 돌아 가는데
반기는 이 하나 없는
이 텅 빈 거리에
내 무엇하러 내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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