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이야기

2015. 2. 7. 이모님께 보낸 편지

낙동대로263 2015. 2. 7.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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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학생 때 였을 겁니다.

 

보수동에 있는 중고책 서점에서 나쇼날 지오그래픽 잡지를 구입해서 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 자신이 누군지 알고 싶은, 제 나름대로는 심오했던 과제와 인간의 사는 방법,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 하는 등등의 의문을 가득히 안고 있었으나, 알 길도 없고, 알아 낼 방법도 모르던 그 당시에 .... 나쇼날 지오그래픽 잡지는 저에게 신세계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당연히 영어로 적혀있어서 멋진 해석을 못했지만 비교적 단순한 문장이어서 드문드문 이해되는 구절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 장엄하고 신비로운 자연의 세계를 찍은 사진들이 저에게는 그 어떤 돌파구와도 같은, 깊고도 선명한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이건 우리가 태어나고 살아왔고 살아갈 세상이며,, 또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환경 속에 우리가 갇혀 있다는 것을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어렴풋 하게는 느꼈더랬지요.

 

그래서,,, 이런 세계를 보고 싶고, 알고 싶고, 느끼고 싶고, 접촉하고 싶어서 .... 아버지께 말했습니다...

 

나중에 나쇼날 지오그래픽 잡지사의 사진기자가 되겠다고 ...

 

적어도 아버지라면,, 제가 나쇼날 지오그래픽 사진기자가 되는 일을 지원해 주리라고... 어이없게도 그렇게 믿었으니 말을 했겠지요.

 

당시의 교육 환경을 보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그 다음 순간,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는 미친놈 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그 미친놈 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도 않았고 왜 미친놈 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이상하다 ... 사진기자 되는 것이 도둑질도 아니고 나쁜 짓도 아니고 이런 곳에 가서 사진을 찍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뭐가 어때서 ?? 라는 것이 그 당시의 제 머리 속에 맴도는 생각이었습니다만,,,

 

아버지의 그 말 한 마디가 ,,, 그 이후, 아버지에게는 진심을 말하지 않게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시 제가 느낀 감정은 허망함, 그리고 슬픔이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저에게 퍼 부은 말들 ....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 외에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아버지로 부터 들은 말들은 ... 좋은 말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았고, 저는 그 때마다 혼란스러웠고 이게 대체 뭐가 잘못된거야 ? 하는 의문에 휩싸여 괴로웠고 허망함과 슬픔을 뒤집어 써야 했습니다.

 

가슴 속의 밑바닥이 터져버려서 모든 것이 전부 쏟아져 나가버리는 듯 한 허망함 ... 아실겁니다.

 

 

지금 .........

 

제가 성인이 되고 정년퇴직을 한 지금...............

 

아버지가 받은 교육과 아버지 청소년기의 사회 및 정치적인 환경, 결혼과 인생 역정과 업적을 '인정' 은 합니다.

 

그렇게 자라고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럴 수 밖에 더 있었겠는가 ? 하는 생각은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 제 가슴 속에 새겨진 그 상처는 지금도 아픕니다.

 

지금도 아버지에게는 제 진심을 말하기가 싫습니다.

 

이제는 아버지도 제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미친놈이라는 지적은 하지 않으시겠지만,,,

 

괜히 애를 써가면서 말 하기는 싫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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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님의 편지에 아버지와의 관계를 걱정하시는 문구가 있어서 .....

 

 

제가 제 마음대로 정리하고 결론을 내린,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러합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마십시오.

 

아버지가 왜 그러할 수 밖에 없었는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가진 문제점은 제가 말 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

 

제가 가진 문제점이라면 '인정' 은 하지만 '이해' 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해' 를 위한 노력을 하기 싫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인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의 이 정도 상황이라면 유달리 더 좋은 부자 관계를 위해 노력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런 접근을 어색해 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왜냐하면, 아버지는 그런 '감성' 을 갖고 계신 분이 아닌 것 같으니까요.

 

아버지를 위해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 그냥 아버지 하고 싶으신 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는 것 뿐인 것 같아서, 그렇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상입니다............

 

 

 

........ 어머니 사진 하나 첨부해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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