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이야기

Story of My Mother

낙동대로263 2012. 2. 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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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이야기를 아버지이야기와 같이 전개해야겠다.

왜냐하면 나에게 영향을 끼친 가장 가까운 사람이며 , 그 영향이 상당한 사람들인데 ,,,

아버지이야기를 마치고 엄마이야기를하려니 자꾸 아버지와 엄마가 같이 거론되고 동일 선상에서  이야기를해야 나도 편할 것 같아서이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이야기를 하다가 엄마이야기가 나오면 이 게시판으로 옮겨와서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돌아가곤 할 생각이다.

 

가뜩이나 기억이 가물거리는 일들인데 생각날 그 시간에 힌트라도 적어두어야 다음에 기억이 잘 날 것같아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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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주 인지가 깨인 집안의 딸이고, 멈추지도 않고 달리지도 않는 ...   자기자신에게는 철저한 사람이다.

아니, 자기자신 뿐 아니라 낭군과 자식이라 해도 똑바르게 하지 않으면 끝장을 보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돈에 무관심한 상태로 살아갔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의 언행이 올발랐기에 그냥 살았다.

아버지가 남자로서, 인간으로서,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허튼 짓을 했다면 같이 죽을 ...   그런 사람이었다.

다시 말한다면,,,    그 시대의 남자들에게 모두 용인되는 짓을 아버지가 했다고 해도 , 어머니의 윤리 기준에 맞지 않으면 끝장이라는 것이다.

 

우리들, 자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조금이라도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면 칼날같이 날카로운 지적을 했었는데 ... 

그 지적방법이 아버지와는 전혀 달랐다.

아버지는 속이 터져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자기 화를 푸는 것 밖에 안된다고 보여지는 지적을 한다면,

어머니는 절대 큰 소리도 없이 하나하나 지적을 하면서 이유와 논리를 이야기하고, 윤리와 상식을 들면서 알아듣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뭔 실수를 한다든지 질못을 저지른다던지 했을 때에도 아버지가 지적하면 아무도 듣지 않았다.  듣는 척 할 뿐이었다.

아버지의 지적을 듣고 있으면 기분이 상하고 반발심이 먼저 생겨서 언쟁이 벌어지고 , 둘 사이는 또 하나의 틈새를 만들고는 마는데 ...

어머니의 지적은 이유도 알아듣고 이해도 되고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되어,,   스스로 그만두는 ...  그런 방식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   

 

2012. 2. 15 (수) 다시 이어 씀 ......

 

어머니의 성격과 인생관과 가치관이 이러하다 보니,,,,  자식들은 자연스럽게 어머니 쪽에 붙게 되었고, 아버지는 그냥 자기 직업세계 속에서 놀게 되었다.

이런 현상이 모든 집이 전부 그런지 아닌지는 알고 싶지 않다.   그건 집집마다 다 다르고 , 그걸 알아봐야 뭐하나 ...  싶어서 이다.

 

그래도 아버지를 깔본다든지 우습게 여긴다든지 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자기 세계에서는 당당히 겨루어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인물이기 대문이고, 가장으로서 식솔을 먹여 살리는 일에 충실하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자식이 아버지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할른지도 모르겠지만,,,   부모는 자식이 평가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래서 평가할 생각은 전혀 없고, 그냥 그렇다는 ...  사실이 그러하다는 ....   그런 뜻일 뿐이다.

 

어머니는 그 당시로는 드물게도 모든 형제 자매들이 좋은 교육을 받았고, 또 머리가 좋은 집안이었다.

결과론적으로 보아도 외삼촌과 이모들의 직업세계라든지 , 그 직업세계에서의 인지도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또, 이모들의 인생 행로 역시 일반적인 행로가 아니었다.

 

첫째 이모는 아주 유망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총각과 결혼을 했는데 이 양반이 아들 둘을 두고는 갑자기 죽어버린다.

그 옛날에 청상과부가 된 이모는 아들 둘을 데리고 살면서 지독한 각오로 살았다고 한다.

남편이 조금 남겨준 재산으로 사채를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생활을 하는....   그런 사채업자가 되어 살았다.

지금도 생존해 계시는데 ,,,    정신이 없다. 도둑놈 온다고 늘 문을 잠그고 살고, 남을 의심하여 도우미도 오지 않아 아들들이 난감해 하고 있다.

 

둘째 이모는 아들 하나, 딸 둘을 낳고는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난 얼굴을 모른다.

 

셋째 이모는 그 시절에 영어에 능통하여 미국인과 연애를 하여 일찌감치 미국으로 기버렸다. 

아주 가끔 우리나라에도 오시고, 미국인 낭군님은 한참 전에 새상을 떠나셔서 홀로 살고 계신다.

 

막내 이모는 연세대 출신 의사와 결혼하여 미국에서 살고 있다.  나하고도 친한 이모님이다. 

삶을 즐기고 좀 까부는 성격이라 낭군님이 감당이 안될 것이라고 짐작한다...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첫째 외삼촌은 수산대학을 졸업한 후, 지금의 동원산업의 참치잡이 선단의 선단장이었다.

내 기억에 어쩌다가 함 번씩 참치를 통째로 갖다 주셔서 이웃과 나누어 먹은 기억이 난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다.

 

둘째 외삼촌은 영어에 능통하고 수완이 좋아 롯데제과의 해외 영업담당으로 세계를 누볐다만,,, 

변변치 않은 배우자를 이쁜 인물만 보고 만나는 바람에 다 날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 좋은 머리로 반 사기꾼이 되었다.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누구나 듣고 있으면 스스로 돈을 내놓을 정도라고 한다.

 

어머니는 이 형제의 넷째로 태어났다.

 

공부를 잘해서인지 외할아버지위 교육열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울산의 사과 과수원 집 딸이 부산여고에 입학을 한다.

그게 어어머니의 마지막 학력이지만, 그 시대의 청소년으로서는 배울만큼 배운 경우였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할 일이 없어 집에서 살림을 하던 중,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한다.

 

그 당시, 아버지는 진주의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 생활을 조금 하다가 , 다시 경북의대에 입학하여 의사가 되어 군의관으로 군 복무 중이었다.

아버지는 돈이 없어서, 그 당시로서는 아주 늙은 노총각이었다.

그냥 군대에서 살아야 할른지 어째야 할른지 계획도 뭣도 없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시고도 군 생활을 한참을 하신 것으로 안다.

지금도 집에만 가면 옛날의 이야기를 하시는 어머니를 통해 들은 이야기인데 당시의 아버지는 가정을 돌보기는 커녕, 자기 부인과 자식에게도 관심이 없는 ,,,  도통 무관심한 그런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버지의 가정에서 아버지에게 관심을 가지고 ...   그렇게 해 준 사람이 없기에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거의 백수건달이지만 그 남편 조차도 없이 손바닥만한 땅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수 많은 아들들을 먹여 살려야만 했던 할머니 입장을 생각한다면 가정교육이고 뭐고 기대할 수 조차 없는 것이지....    그렇게 본다면 아버지도 시대적 희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는 당시, 부인과 젖먹이에 불과한 나를 내버려 두고 군 부대 주변의 다방 여종업원과 같이 앉아서 희희낙낙하는 아버지를 보고는 실망을 금치 못하셨고, 저 사람을 믿다가는 집안이 거지꼴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시고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고 한다....    난 기억도 없는 일이지만 ... 듣기도 거북한 이야기 이지만 ....

 

아버지는 우찌우찌 제대를하시고는 부산으로 식솔을 데리고 온다.  

부산의대에 자그마한 자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부산에서 살기 시작했다.

 

사람이 대도시에서 자라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그 당사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모의 거주지에 따라 도시민이냐 아니야 하는 것이 결정되고 교육과 생활과 직업을 비롯한 오만잡것이 모두 결정되다시피하는 현세를 볼때,  사람의 운명은 그야말로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거기서 살고 싶다고 살고, 살기 싫다고 살지 않고 ...  하는 것이야 성인이 되어 자기 경제력으로 마음대로 할 단계가 되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렇게 되기 까지의 과정을 생각한다면 그건 ...   참으로 온당한 일인지 먼지 ....   그야말로 철학적 문제인 것 같다 .

 

어머니는 그렇게 살면서 참으로 경우에 어긋나는 일만 아니라면 무슨 짓이든지 하면서 재산을 모았다.

아버지는 그러는 어머니를 돕기도 했지만 어떨 때에는 탐탁치 않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내 생각에,,,  아버지의 계획에 따랐다면 우리 집안은 거지가 되었지 ....  싶다.

지금의 아버지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도 거의 그러한데 뭘 모르던 젊은 날에야 말 할 것도 없지...

 

 

 

2012. 2. 16 (목) 에 이어서 씀 ...

 

어머니 이야기를 하다가 아버지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  다시 어머니 이야기로 ...

 

여러가지 일화가 많지만, 어머니의 일생은 오로지 자식과 가족을 위한 일생이었다.

난 슈퍼맘 이라는 텔레비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떤 사람들이 슈퍼맘인지 궁금해서 본 적이 있었다.

내용은 그야말로 돈 많이 번 연예인 이야기였다.

이건 슈퍼맘이 아니지...   난 아주 실망했고 다시는 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내 어머니는 내가 판단하기로는 진정한 슈퍼맘이었다.

멈추지도 않고, 뛰지도 않으면서 끝내 목표를 이루고야 마는 그런 방식의 삶을 살았다.

어머니의 삶의 방식은,,  출세니 뭐니 하는 외형적인 무엇을 추구하기 보다는 실용성과 실리를 생각하셨고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행동하셨다.

난 내 머리 속에 박혀있는 실용성 이라는 가치에 대해서는 꽤나 지키는 편인데,,,   그건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그러나, 그 반면에 충동구매를 한다든지 인터넷 쇼핑을 한다든지 하는 점은 아버지의 얼리 어댑터 (Early Adapter) 기질이 혼합되어 있다고 본다.

난 인터넷 쇼핑을 즐기는 편이고, 쓰잘데 없는 것도 호기심이 발동하면 구입해서 사용해 보는 편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잡비 지출이 늘고, 그런 물건들이 집안에 제법 있지만, 실제 실용성이 없는 것들이 많더라.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그런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그 동안 인터넷을 뒤져서 쇼핑을 하던 실력이 있어서인지 이런저런 목적물을 찾는 일이 쉽다.

그게 공짜가 아니라서 ...    그 동안 지출한 돈이 아깝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편리함을 얻었으니 ...  하고 스스로를 달래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일화 중의 하나를 말하자면 이런 일이 있다.

 

이게 어머니로 부터 받은 첫번째 충격이다.

 

어느 날,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니 문이 잠겨 있어서 그냥 가방을 메고 골목에서 놀고 있었다.

놀다가 지쳐서 담벼락에 기대어 쉬고 있는데 저 멀리서 어떤 아주머니가 울면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난 왜 울까 ?  하고 자세히 보니 그게 어머니였다.

 

난 깜짝 놀랐다.  엄마가 길거리에서 울고 오는 모습을 본 초등학생이 놀라지 않고 뭘 어쩌랴 ...

어머니는 한쪽 팔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닦으면서 오시느라 날 보지 못하셨고, 난 내내 어머니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지척에 오시고서야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셨는지 울음을 뚝 그치시고 나를 보았고,,,  나도 어머니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어머니는 ... 어 ,, ***  야, 여기 왜 있노 .... 

난 ... 어, 학교가 일찍 마쳐서 ...   그렇게 대화는 끝났고 우린 집으로 들어갔다.

난 무척 우울했고, 혼란스러웠으며 이게 무슨 일인지 알 길도 없는 경험에 아주 당황스러운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평소대로 간식을 주셨고 난 먹었지만, 난 큰 충격을 받았다.

다른 경험은 다 잊어버렸지만, 그 사건은 머리에 박혀 지워지지가 않는다.

항상 우리를 지켜줄 것만 같았던 어머니의 무너진 모습을 직접 목격한 나로서는 ....   그 어린 나이에도 적막함을 느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   어제와 같은 날들이 계속 이어졌지만, 내 가슴속 한 쪽 구석에는 울면서 오는 어머니의 모습이 각인되고 말았다.

지금도 그 시간으로 돌아가면 , 당시의 그 장면 장면 들이 또렸하게 떠오른다....   영화를 보는 듯 하다.

 

내가 앞가림을 하게 된 청년이 되어서야 난 대강 느꼈다.

그 때의 어머니가 왜 그랬을까 ?  하는 의문에 대강의 답을 얻었던 것이다... 당연히 짐작이지만 거의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 때의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어둡다.

그 이유가 떠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도 없다는 점이 괴롭고,,,,,

 

난 이 충격이 내 평생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그래서 내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을 때, 그러한 충격은 주지 말아야지 ...   하는 맹세를 했다.

오로지 올바르고 온전하고 상식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내 아이가 나처럼 이런 충격 속에서 살아가지 않을 것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건 다 틀려버렸다.

내가 아이들 엄마와 헤어지는 바람에 ...  더한 충격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이 나에게 남아 있었는데 ,

최근의 여러 정황들을 살피건데 ...   약간 안심은 된다.

 

그 당시의 어머니 생각을 하면 .... 그 이유를 생각하면 .....  그녀가 생각난다.

내 어머니와 같은 심정을 그녀도 경험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했을 것이다....   틀림없이 더 했을 것이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휘몰아친다 ,,,   그녀를 위해주고 싶다 ,,,, 

 

어머니의 트라우마를 고쳐드리지 못했다는 내 트라우마를 그녀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고 해도 좋다.

 

재구성 해 본 그녀의 옛날 ....  

답답하고 안스럽고 .... 그 시간의 어머니를 보는 듯 하기도하고 ...

 

 

그만 쓸란다.

 

오늘은 여기까지 ..................

 

2012. 2. 21 (화) 에 이어 씀 ...

 

어머니로 부터 받은 두번째 충격을 쓴다 ....

 

고등학교 때이다.

난 그 시절, 그리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중간을 따라가는 ...    그런 정도였다.

내 관심은 자연현상과 그 자연과 어울리는 것이었다.

나쇼날 지오그래픽 이라는 잡지도 한글판이 없던 시절이라 영어판 중고를 구입해서 열심히 번역해서 읽곤 했는데 ...

대학 입시와는 동떨어진 영어세계가 좋았고, 그 찬란한 자연의 세계가 좋았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런 내가 걱정이었고 불만의 대상이었다. 

당연한 것이다..  대학 입시가 그 시절의 고등학생에게는 지상 최대의 과제였고 전부였으니까 ...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어려운 현상이다.

 

공부는 그렇다고 치고 ,,,,   행실에 있어서의 나는 그리 나쁜 학생은 아니었는데 , 부모님은 공부를 잘 하지 못하니 내 언행 하나하나가 밉상스러웠는지 ...

내 전부를 공부를 기준삼아 판단하는 그런 일도 난 아주 싫었다.   혼란스럽기도 하고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이해가 안되는 일이 많았다.

난 내가 뭘 잘못해서 부모님이 저러는가 ?    저렇게 짜등을 내는가 ??   이해가 안되었고 부모님은 그런 내가 답답해 죽을 지경인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 간다고 큰 길을 벗어나 학생들이 많이 가는 지름길인 골목길을 통해서 열심히 학교로 가고 있었다.

당연히 많은 학생들이 같이 그 길을 가고 있었다.

갑자기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 * 야 !!!   이 자식아 너 어디가니 !!!!!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뒤를 돌아 보았다.   어머니가 숨을 몰아 쉬면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난 한 순간에 느꼈다....   내가 학교에 정말 가는지 가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 따라오고 있었고,,,

학교가 잘 보이는 큰 길이 아닌 희안한 골목길로 들어서서 가는 나를 보고는 학교에 가지 않고 딴 곳으로 간다고 확신한 어머니의 생각이 순식간에 느껴졌다.

 

난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언덕길을 올라오느라고 땀에 젖은 어머니도 내 앞에 섰다....   너 어디가니 ??  ...  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나왔다.

난 가슴과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렇게 믿지 못할 그런 자식이었나 ??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천천히 일어나서 아무 말없이 학교로 가기 시작했고, 그런 심상치 않은 내 모습에 어머니도 말을 못하고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골목길을 벗어나자 학교 정문이 바로 코 앞에 나왔고,,,  난 학교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따라오는지 어떤지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온 세상이 나를 버린 듯한 그 황량한 느낌....  

부모가 나를 이런 정도로 믿지 않는다는 확신 ....  

살아야 할 의미를 찾기가 어려운 몰락을 느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오기가 싫었지만 당장 갈 곳이 없어서 였다....

내 방에 들어가서 앉았다.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아무 것도 보기가 싫었고, 듣기도 싫었고, 느끼기도 싫었다.

조용히 사라지고 싶은  ...   그런 생각만 들었다. 

이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고개를 숙이고 절망과 몰락을 느끼면서 앉아 있은지 ....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 *  야, 미안하다 .... 

 

난 아무런 느낌도, 변화도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그 충격 그대로 덮어쓰고는 그냥 그대로 였다.

나를 이다지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내가 어떻게 같이 살아야 하는가 ....

왜 같이 살아야 하는가 .... 

부모가 볼 때에는 내가 그런 정도인가 ....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단 말인가 .... 

내 주변 상황에 대한 그 어떤 느낌도 전해져 오지가 않았다.....

 

도저히,  도저히 ,,,,,,    회복되어지지가 않았다.

 

지금도 이 상황은 내 머리속에 뚜렷하게 각인이 되어 있다.

지금도 그 시간을 떠올리면 마음이 어두워진다.

 

어머니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상처라는 흔적이 남은 것을 느낀다.

그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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