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시

신동호 / 진중권 / 빈 꽃밭 주고받기

낙동대로263 2020. 12. 25. 11:57

 

'빈 꽃밭' 詩로 반격한 靑비서관…진중권의 답시는 '빈 똥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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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책임지는 신동호 청와대 연설비서관과, 문재인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1일 기형도 시인의 ‘빈 집’을 변용한 시로 공방을 벌였다. ‘빈 집’은 기 시인이 사망하기 직전에 발표한 시로 사랑의 상실을 다루고 있다. 2020.06.11. - 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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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비서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시

빈 꽃밭 --- 기형도의 빈집을 기리며

 

(어느 날 아이가 꽃을 꺾자

일군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아이는 더 많은 꽃을 꺾었고

급기야 자기 마음속 꽃을 꺾어버리고 말았다)

 

꽃을 잃고, 나는 운다

 

문자향이여 안녕,

그림은 그림일 뿐, 너를 위해 비워둔 여백들아

도자기 하나를 위해 가마로 기어들어 간

예술혼이여 맘껏 슬퍼해라

 

꽃을 피워야할 당신이 꽃을 꺾고

나는 운다, 헛된 공부여 잘 가거라

 

즐거움(樂)에 풀(艸)을 붙여 약(藥)을 만든

가엾은 내 사랑 꽃밭 서성이고

울고 웃다가, 웃다가 울고 마는 우리들아

 

통념을 깨는 곳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부조화도, 때론 추한 것도 우리들의 것이었다

 

숭고를 향해 걷는 길에 당신은

결국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지만

 

꽃을 잃고, 우리는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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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전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시

빈 똥밭 --- 신동호의 빈꽃밭을 기리며

 

어느날 아이가 똥을 치우자

일군의 파리들이 아우성을 쳤다.

아이는 더 많은 똥을 치웠고

급기야 그들 마음 속의 똥을 치워버리고 말았다.

 

똥을 잃은 그가 운다

 

똥냄새여 안녕,

그림은 그림일 뿐, 너를 위해 비워둔 여백들이여

출세 하나를 위해 기와집으로 기어들어 간

예술혼이여 맘껏 슬퍼해라

 

같이 쌀 줄 알았던 아이가 똥을 치우니

그가 운다, 몹쓸 공부는 잘 가라며

 

쌀(米)을 바꿔(異) 똥(糞)을 만든

가엾은 네 사랑 똥밭 서성이고

울고 웃다가, 웃다가 울고 마는 파리들아

 

똥냄새 나는 곳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추한 똥도, 때론 설사 똥도 그들의 것이었다

 

청결을 향해 걷는 길에 아이는

결국 청소하다가 지쳐 주저앉았지만

 

똥을 잃고도, 파리들은 울지 않는다.

똥 쌀 놈은 많다며 울지 않는다.

 

아이는 문득 기형도가 불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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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평가는 진중권의 KO 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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