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시

그 후 / 박범신

낙동대로263 2019. 10. 3. 16:38



물가에 혼자 앉아서
이제 그만 고즈녁 저물어야지
그물을 거두어 돌아가는 어부처럼


더러는 기우는 햇빛이
더 붉을 수도 있다고
불끈 말하고 싶을 때에도
쉬, 표시나지 않게 저물어야지
누군가의 등 뒤에서


내가 이윽고 캄캄해 지고 나면
아무렴, 그게 바로 사랑이겠지
가끔은 그리운 사람을 위해
관솔 같은 상처를 태워
초롱에 불을 밝히자


흐르는 물에 억센 연장들을 씻고
바람에 맡겨 젖은 이마를 말리고
어디서 지금
저녁 강 돌아눕는 소리


저물면 조용히 허물어지도록
기울면 가만히 캄캄해지도록
아무렴, 그냥 두자 무심히


조금씩 캄캄해지면서
캄캄해져 조금씩 은밀해지면서
맑고맑게 깊어져야지 우리
저기 강물 아래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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