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시

당신 / 박범신

낙동대로263 2017. 9. 28. 16:00




--- 당신 ---  



그곳에 당신이 있다 해서 달려갔더니

그곳에 당신은 없고 난초 하나 꽃을 피우고 있었다네

아니야 난초 하나 꽃을 피우고 있는 줄 알았으나

그것은 당신 앉았던자리에 남은 당신의 향기였다네


나는 오래 그곳에 앉아 있었어

그 향기 떡갈나무숲으로 가는 코스모스 길가에서

어떤 순간 나는 가장 어여쁜 꿈 하나 새로 가졌지

이승을 등지고 떠날 때 나도 이런 향기로 남으면 참 좋겠구나


타오르는 울음이 당신의 횡경막을 누를 때

명주바람보다 부드러운 향기가 되어

당신의 눈과 코와 입술과 귓구멍을 적신다면

나의 오색향기로 횡경막을 들어올려 당신을 숨쉬게 할 수 있다면

그럼,그렇고말고, 그때 비로소 당신과 내가 서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

 

나는 한사코 당신을 온전히 갖고 싶었으나 소유했다고 느낄 때도 더러 있었으나 아니야,

내가 가질 수 있었던 건 다만 당신의 향기뿐이었어

그게 사랑이란 걸 이제 겨우 알겠네



--- 박범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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