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시

굴비 --- 오탁번

낙동대로263 2017. 1. 1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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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으면 ,,,   구전되어 전해져 내려오는 우스갯소리인가 ?  할 것이지만 ...

이 글은 시인 오탁번이 쓴 시로서 동인문학상 후보작이다...


삶에 찌들린 민초들의 비애가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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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
―굴비 사려, 굴비!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보았다
―그거 한 번 하면 한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후 굴비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빡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主 : 동인문학상 후보에 오른 작품
굴비 / 오탁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