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이야기

폭행 가장의 죽음 ....

낙동대로263 2012. 9. 4. 13:47

 

 

 

【수원=뉴시스】노수정 기자 = "피고인들은 이미 수십년간 이유 없는 폭력에 시달리며 누구보다 큰 괴로움을 겪어왔습니다.

따라서 피고인 모두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립니다. 구속됐던 피고인 ○○○은 금일 석방하겠습니다."

4일 0시25분 수원지법 110호 법정. 술에 취해 가족 모두를 죽이겠다며 흉기를 찾는 가장의 입을 막고 4시간30분간 방치해 질식사시킨 혐의(살인·존속살해)로 기소된 모녀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지자 긴장감으로 꽉 찼던 법정은 일순간 눈물바다가 됐다.

전날 오전 9시30분부터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까지 계속된 이날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15시간 넘게 재판을 지켜본 배심원들과 방청석에 있던 가정폭력 상담소 관계자들은 재판부의 판결이 집행유예로 나오자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지난 4월11일 오후 8시.
성남시 중원구에 사는 피고인 A(46·여)씨는 아침부터 계속된 남편의 술주정을 견디다 못해 "다 죽이겠다"며 흉기를 찾는 남편의 손과 발을 줄넘기줄로 묶었다.

어릴 적부터 술에 취한 아버지로부터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리던 둘째딸 B(26·여)씨와 막내아들 C(14·중2)군도 어머니를 도왔다.

평소보다 유난히 난폭했던 아버지를 그대로 뒀다가는 정말로 무슨 큰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날 A씨 남편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아침부터 술을 마셨다. 아침에 일어나
막걸리 5병을 혼자 비운 그는 낮동안 잠이 들었다가 저녁에 다시 일어나 또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할 때마다 그는 뇌병변 1급 장애로 거동이 불편해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첫딸(29·여)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사건 당일에는 장애인 딸의 머리채를 잡아 화장실 벽면에 찧는 소리가 온 집안에 쿵쿵 울릴 정도였다.

"수원에서 3일간 일한 돈을 받지 못했다"는 그는 감정이 격해져 흉기를 찾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의 폭행에 시달려온 셋째딸(21·여)은 발길질을 피해 집밖으로 뛰쳐나갔고 씨름선수인 C군이 이를 막으면서 아버지가 쓰러졌다. A씨는 다급하게 옆에 있던 줄넘기줄과 케이블선으로 남편의 손과 발을 묶었다.

애완동물의 털을 제거할 때 사용하던 청테이프로는 "다 죽이겠다"며 고함을 치는 입을 막았다.

속옷만 입은 채로 흉기를 찾던 남편을 결박한 A씨는 아이들과 함께 남편을 안방으로 옮긴 뒤 이불을 씌웠다. 남편의 격한 몸부림으로 이불이 헝클어지자 몸에 덮은 이불을 청테이프로 고정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음날 오전 2시께 청테이프 사이로 들리던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안방에 들어가보니 남편은 이미 호흡이 멈춘 상태였다.

A씨는 놀라 119에 신고했고, 119가 오는 사이 청테이프와 결박에 쓰인 줄을 숨기도록 했다.

경찰에 간 A씨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단독 범행이라고 거짓 진술을 했다.

그러나 A씨 남편의 폭력은 이날 뿐이 아니었다. 21살의 나이로 남편과 만나 동거생활을 시작한 A씨는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이유 없는 폭력에 시달렸다. 임신 초기 단지 그는 "콜라를 먹고 싶어 했다"는 이유로 몽둥이로 맞고 발길질을 당했다.

남편은 술에 취할 때마다 폭력을 휘둘렀고 손에 잡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던졌다.

술집여자와 바람이 났다는 남편동료의 말에 "술집에서 돌아오지 말라"고 하자 흉기로 옆구리를 찌르기도 했다.

아이들도 폭력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아들을 원했던 남편은 막내아들을 제외한 세딸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방황하던 첫딸이 18살 때 오토바이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되자 "너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면서 폭력의 수위를 더욱 높였다.

당시 사고 보험금으로 받은 8000만원은 어디에 썼는지 만져보지도 못했다.

남편은 장애가 있는 첫딸은 물론 둘째와 어린 셋째딸에게 성추행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딸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경기를 할 때까지 막무가내 폭력을 가하면서도 "쇼하는 거야"라며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

셋째딸은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맞아 자살을 시도했다.

그런 A씨는 이날 법정에서 "무서워서 집을 나갈까도 생각했지만 병든 첫째딸과 불쌍한 아이들을 두고 나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그는 자녀들에게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책임을 모두 자신에게 돌리며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A씨와 함께 기소된 둘째딸 B씨는 "계획적으로 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니냐"는 검찰의 끈질긴 추궁에 "그날 아빠를 말리지 않아서 (내가) 죽었어야 했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사건을 심리한 수원지법 형사12부(재판장 김정운 부장판사)는 그러나 이들의
과잉방위를 인정해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비구폐색질식으로 사망했지만 입만 막았을 뿐 코를 막지 않았고 피해자가 최소한 몇시간 동안 살아있던 점으로 비춰 살인의 범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살인 및 존속살해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검찰이 재판 도중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한 폭행치사와 존속폭행치사 혐의는 자백과 여러 증거를 근거로 유죄 판결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들이 장기간 폭력으로 고통 받아왔고 이미 누구보다 큰 괴로움을 겪어왔으며 평생 그 고통을 안고 살아갈 것으로 보이는 점, 첫째딸이 장애인이고 막내아들이 학생이어서 소득을 보장할 수 없는 양육환경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며 피고인 모두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9명의 배심원단도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과잉방어를 인정, 피고인들에 대해 전원 집행유예의 의견을 냈다.

반면 검찰은 "가족을 위해 소처럼 일한 가장의 삶의 무게를 덜어주기는커녕 고통스럽게 살해했다"며 A씨에게 징역 7년, B씨에게 징역 3년6월을 구형했다. 범행에 동참한 C군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형사 미성년자로 소년부 재판에 송치된 탓에 이날 재판을 받지는 않았다.

사건을 맡은
박준영 국선변호인은 "가정폭력의 악순환을 더이상 사회와 법이 방조해서는 안 된다"며 "장기간 인권유린을 당해 온 A씨 가족이 이제라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가 관심과 배려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nsj@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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