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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 협박한 북한, 기회 노리고 있었다

낙동대로263 2020. 6. 14. 19:21

북한이 대북전단(삐라) 살포 문제와 관련해 열흘 사이 5번의 담화를 쏟아내며 협박 섞인 비난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는 북한이 잇단 말폭탄을 퍼부으며 급기야 군사행동까지 예고하는 등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의 성과를 송두리째 뒤엎는 행동을 보이자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2018년 4월27일 1차 정상회담을 갖고 '판문점 선언'을 이끌어낸 데 이어 그해 9월까지 세 번의 만남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이 서로 노력하자고 굳게 약속했다.

 

하지만 북측의 태도는 불과 1년 9개월 만에 갑자기 달라졌다. 3차 정상회담 직후 남북이 상시 소통하며 협력사업을 가속화하자는 뜻으로 설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군사행동'까지 예고한 것이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전날(13일) 한밤 중에 담화를 발표하며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고 선언했다.

김 제1부부장은 "남조선 당국이 궁금해 할 그 다음의 우리의 계획에 대해서도 이 기회에 암시한다면 다음번 대적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며 "우리 군대 역시 인민들의 분노를 다소나마 식혀줄 그 무엇인가를 결심하고 단행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도높은 군사도발을 시사하기도 했다.

 

지난 4일부터 시작된 북한의 대남 담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험악한 내용이 담기며 긴장감을 높였다. 전날 발표한 담화에 대남 군사도발 예고까지 실리자 청와대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14일 새벽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화상화의를 개최해 대책 논의에 나섰다.

북한은 삐라 살포 문제와 관련해 이날까지 총 다섯 번의 입장을 발표했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를 시작으로 통일전선부 대변인(5일), 조선중앙통신 보도(9일), 장금철 통일전선부장(12일), 김 제1부부장(13일) 담화까지 모두 다섯 번이다.

 

김 제1부부장의 첫 담화에서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단 철거, 남북 군사합의 파기 등 남북관계 단절을 예고했다.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에서는 "남측이 몹시 피로해할 일판을 준비"하고 있다고 경고했고,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는 대남 사업을 '대적 사업'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남측을 '적'으로 규정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 입장과 함께 북한은 남북간 모든 통신연락선을 차단했다.

 

12일과 13일에는 늦은 밤 기습적으로 담화가 발표됐다. 장금철 통일전선부장은 청와대와 정부가 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하며 "저지른 무거운 죗값에 비해 반성하는 태도가 너무나 가볍다"고 비난했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도 밤늦게 발표하며 군사적 도발 가능성까지 암시했다.

정부는 갈수록 거세지는 북한의 태도에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북한이 반발한 삐라 문제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적절한 대응을 취하고 있는데도, 북측이 더욱 거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청와대가 김 제1부부장 4일 담화 이후 NSC 정례회의에서 대북 민간단체들의 삐라 살포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는 '성의있는' 조치를 취했음에도 북한이 군사행동 예고로 이를 맞받으면서, 청와대는 14일 새벽 이례적으로 NSC 긴급회의를 열고 북측의 의도를 놓고 집중 논의했다.

특히 이날 회의에서 외교·통일·국방 장관외에 박한기 합참의장이 이례적으로 참석해 북측의 도발 가능성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을 점검했다.

일각에선 북측의 잇단 '폭탄 담화'들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두고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아무리 '백두혈통'의 메시지라고는 하나, 김 제1부부장의 두 차례 담화로 인해 남북관계가 휘청이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 차례의 '협박'식 담화에도 정부는 김 제1부부장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을 삼가며 일정 거리를 유지해왔다. 전날 김 제1부부장의 군사적 행동 예고 담화에도 정부는 여전히 "남북 간 합의를 준수해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발표했다.

다만 군 통신선 단절에도 별다른 입장 발표 없이 사태를 주시하고 있던 국방부는 9·19 군사합의 파기 거론에 별도의 입장을 밝혔다. 국방부는 "우리 군은 모든 상황에 대비해 확고한 군사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국방부는 정경두 국방장관의 주재로 이날 오전 내부 긴급회의를 소집, 대비태세 점검 및 향후 대책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안팎에선 현재의 대북 기조에 대한 우려는 물론, 방향성의 수정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등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 북한의 잇단 도발에도 인내를 지속해오고, 남북 정상간 세 차례 만남을 통해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켰다는 성과를 세웠음에도 북한이 합의 파기에 나설 경우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감지된다.

 

일각에선 북한이 '결별'을 선언한만큼, 이를 대외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정부 차원의 추가적 대응보다는 상황 관리에 주력해야 한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북한의 입장으로선 한반도 '군사 도발' 카드를 활용함으로 지지부진한 비핵화 협상 국면을 전환해 보겠단 전략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 대선에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됐던 한반도 문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흑인 사망' 시위 등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