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이야기

결혼사기 조심하세요...

낙동대로263 2020. 2. 10. 09:10


7년 동안 ‘가짜 아내’와 살아온 40대 남편의 황당한 사건



“나는 9살 연상의 이혼녀에게 속아서 결혼했다”


지난 8월 31일, 서울가정법원에서는 희한한 이혼 사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자신의 아내가 ‘가짜’였다고 주장하는 40대 남자와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이혼하기 위해 명분을 만든 것이라는 50대 여성 간의 혼인 무효 및 위자료 청구 소송이었다.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원래는 1955년생 이혼녀였으면서 1962년생인 친동생 이름을 빌려 노처녀 행세를 하고 사기 결혼을 했습니다. ”

“연애할 때부터 말하려고 하면 ‘됐다’며 입을 막았고, 여러 정황상 이미 다 알고 있을 수밖에 없는 사실인데, 이제 와서 문제 삼는 저의가 궁금합니다. ”

서로를 파렴치한 사기꾼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만난 것은 지난 1996년. 국내 유명 대학교를 졸업하고 유학까지 다녀온 윤영호(가명, 43세)씨는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직원이었다. 
 

당시 30대 초반이던 윤씨는 열심히 일하는 거래처 직원 권희숙(가명, 52세)씨에게 남다른 감정을 가지게 된다.

이는 권씨 역시 마찬가지. 두 사람은 1년여 간 연애를 하다 이듬해 4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신은 권희숙이야, 권희정이야?”

그런데 결혼식장 입구와 청첩장에는 신랑 윤영호와 신부 권희숙이 아닌 신랑 윤영호, 신부 권희정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권씨는 직장에서도 남편에게도 권희정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1962년생 권희정, 명문 K대학을 나왔으며 교사로 재직했다는 게 윤씨가 아내로부터 들은 얘기다.

남편은 경찰과 검찰 진술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처음 만났을 때 결혼 시기를 놓친 노처녀라고 했습니다. 먼저 적극적으로 접근해 애정표현을 했고 교제할 때도 명문대 졸업 반지를 끼고 다니며,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전교조 사건으로 사직한 후 의류회사에서 일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생년월일을 1962년생 1월 15일이라고 하여 결혼 후 생일에 맞춰 파티를 하기도 했습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명함에도 ‘권희정’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

그렇게 2살 연상의 아내와 결혼생활을 하던 윤씨는 혼인신고를 차일피일 미루는 권씨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별다른 의심을 하진 않았다. 아내는 자신의 잘못된 호적을 처리해야 한다는 핑계로 결혼생활 4년여 만인 2001년에야 혼자 가서 혼인신고를 해버렸다고 한다.

“혼인신고를 미룬 것도 그렇지만, 아이를 기다리는 저와 달리 아이 갖는 것에는 관심도 없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결혼식 전에 한 번 임신이 됐는데 감기약을 많이 먹어서 어쩔 수 없이 중절수술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때문에 임신이 안 된다고요.

중절수술을 할 때 함께 간 것은 아니고, 나중에 얘기만 들었습니다.

시험관 시술이라도 받아보자고 하니, 역시 혼자 가겠다고 우겨 정액만 채취해주었습니다.

좀 있으니 ‘애는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이런 문제들이 겹치면서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윤씨가 직장 생활을 하는 내내 권씨는 월급을 관리하면서 이를 자신의 사업자금으로 털어 넣은 것도 모자라 윤씨에게 대출을 받게 해 사업자금을 조달했다는 것이다.


사업을 핑계로 외박이 잦은 것도 그렇고, 집 안에 아내의 졸업 앨범이나 과거 사진 등이 단 한 장도 없던 것, 처가에 인사를 가겠다고 해도 달가워하지 않은 것, 심지어는 장인 제사나 성묘도 갈 필요 없다고 남편을 따돌린 것 등 이상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윤씨는 기자에게 “이상하긴 했지만, 별다른 문제가 있을 것이란 생각은 못했다”며 “아내의 오빠가 명문대 대학원장으로 명망 있는 학자 집안이라는 점 때문에 처가를 믿은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지만 그런대로 결혼생활은 유지했다.

그러다 지난 2003년경 윤씨가 퇴직금 중간 정산을 받아 부도난 형에게 주었다는 이유로 부부는 심하게 다투었다.

그리고 2004년 4월 별거를 했고 급기야 이혼을 결정하면서 ‘가짜 아내’의 신분이 드러난 것이다.



고소인 윤씨, ‘가족 사기극’이라고 주장

이혼을 결심하고 자신의 호적을 뗀 윤씨는 자신의 ‘처’로 ‘1955년생 권희숙’이 올라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엔 뭔가 착오가 생긴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는 이상한 생각에 권희숙의 동생이라고 기재돼 있는 ‘권희정’의 호적을 확인하고 심장이 멎는 듯했다.


권희정이 자신과 결혼하던 1997년 당시, 아이가 둘이 있는 유부녀였던 것이다.

윤씨는 아내가 유부녀임을 숨기고 자신과 결혼한 후 1955년생인 언니 ‘권희숙’ 이름으로 혼신신고를 한 것으로 추측했다.

그래서 2005년 2월 서울지방검찰청에 공문서 위조 및 사기 혐의로 권희정 등을 고소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자신의 아내를 1962년생 권희정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수사 과정에서 주민등록증 사진을 대조한 결과 윤씨 아내는 실제로 호적에 올라 있는 인물인 1955년생 권희숙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권희정이 언니 이름으로 혼인신고를 한 게 아니라 권희숙이 동생 이름과 나이로 살아온 것이다.

윤씨는 다시 권희숙과 그의 가족을 상대로 혼인 무효 및 피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 소송을 냈다.

1962년생이라던 아내는 자신보다 무려 9살이나 많은 1955년생이고 원래 이름은 권희숙이며 권희정은 친동생 이름이라는 것, 그리고 동생의 이름과 나이로 살면서 온갖 거짓말로 둘러대며 자신과 결혼하고 생활해온 것을 알게 된 윤씨는 큰 충격에 빠졌다.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일가족이 짜고 자신을 속인 것 같았다.

생 이름으로 결혼식을 치르는 ‘권희숙’을 모두 모른 척했고 그 자리에 참석한 동생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윤씨 측이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청첩장과 성혼선언문, 결혼식 당일 사진 등을 살펴보면 신부의 이름은 전부 ‘권희정’으로 돼 있다. 윤씨는 아내가 동생의 신분으로 자신과 결혼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두 번 이혼한 경력이 있고 이미 아이도 셋이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업무를 핑계로 외박이 잦던 것은 밖에서 이중생활을 했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처녀 행세를 하며 사기 결혼을 한 건 경제적인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

결혼생활 중 약 5억원의 돈을 편취당했다고 주장하는 윤씨.

그의 말대로라면 계획적인 ‘가족 사기극’에 휘말린 엽기적인 사건이다.

윤씨 측이 제출한 소송 자료에 의하면 권씨의 최종학력은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직업학교를 수료해 초졸에 해당됐으며,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는 것도 모두 거짓이다.

권씨는 현재 30세인 딸과 27세, 24세인 아들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윤씨는 최근 기자에게 답답한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제가 계획적인 사기에 당한 것입니다. 정말 감쪽같이 연기를 했어요. 결혼 후에도 함께 주민등록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제가 알 수 없던 거였죠. 실제로 살지도 않으면서 지방으로 주소지를 옮겨놓곤 했습니다. 또 살면서 자기 호적등본 떼볼 일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래서 모른 것이죠. 좀 이상했을 때 빨리 캐지 못한 게 한이 될 뿐입니다. ”

현재 윤씨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가짜 아내 때문에 돈도 명예도 건강도 모두 잃어버렸다.

보통의 40대 남자라면 자식들을 위해 밖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살고 있을 텐데 자신의 삶이 엉망이 됐다고 한탄한다.

“저는 이 일로 인생을 철저히 망친 사람입니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집니다. 대학 졸업하고 영국 유학까지 갔다 온 총각이 9살 연상에 아이가 셋이나 있는 이혼녀의 세 번째 남자가 될 생각을 어떻게 했겠습니까? 제 사회적 지위로 번 소득으로 정상적인 여자와 가정을 꾸렸더라면 지금 번듯하게 살고 있을 겁니다. 지금 저는 자식도 없고 재산도 없는 한심한 남자로 되었습니다. ”

하지만 권희숙씨 측 입장은 윤씨와 정반대다.


윤씨가 다른 여자가 생겨 이혼해달라는 요구를 먼저 했고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은 돈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녀는 재판과정에서 “결혼식 때 권희정이라는 이름을 쓴 건 당시 회사 거래처 사람들이 이름을 희정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혼란을 줄까봐 상의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면서 “나이는 1955년생이라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권씨는 윤씨가 처음부터 자신의 과거를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걸 알고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고 말한다.

권씨의 어머니는 “큰딸의 이름은 분명 희숙이다. 자기 이름이 있는데 왜 동생 이름을 쓰나? 예식장에서 희정의 이름이 쓰여 있는 건 봤지만 사정이 있어서 자기들끼리 알아서 했겠지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 대해 “권희숙은 두 차례 결혼과 이혼 경험이 있으며 그 사이에 세 명의 자녀를 두었고, 교직생활을 한 경력은 없다. 자신의 학력, 혼인 경력, 출산 경력 등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이와 같은 기망에 의한 착오가 없었더라면 윤영호가 혼인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2001년 신고하여 한 혼인을 취소하고 권희숙은 윤영호에게 위자료 3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가족들이 공모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가족들이 직접 학력, 혼인 경력 등에 대해 허위 사실을 말한 적은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이 복잡하고 희한한 사기 결혼 송사는 여기서 끝날 것 같지 않다.

양측 모두 재판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


워낙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휘말리다 보니 스스로가 한심해 견딜 수 없다는 윤씨는 지난 1년여 간의 소송으로도 지칠 대로 지쳤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며 한숨을 내쉰다.


현재 외국에 나가 있다는 권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도 별도의 대응책을 세우고 있다. 다른 말은 하고 싶지 않다”고 짧게 답한 후 황급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과연 윤씨가 잃어버린 7년을 보상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