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생존방법

재난 후 사람들의 심리

낙동대로263 2014. 11. 4. 17:46

 

 

 

길지만 읽어 볼 만한 글입니다. 역시 국립방재교육연구원 자료를 발췌하였습니다.

 

재난 후, 사람들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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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충격반응단계(the shock reaction)

충격반응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재난생존자의 10~20%만이 재난과 충격에서도 냉정하게 행동할 수 있다고 한다.

70%는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모르고, 나머지 10%는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어서 심한 공포나 불안에 사로잡히거나 공황상태에 빠지고 또는 분노에 사로잡히고 소리를 질러댄다. 반 미친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희생자에게 손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도와야 할 사람도 재난의 충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남아시아에 쓰나미가 밀어 닥쳤을 때 방송을 통해 비춰진 그들의 모습을 보면, 해일이 밀어닥칠 때 처음에는 의아한 모습으로 있다가 위험을 느끼고는 마구 달리는 것 이외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너무 물살이 거세어지고 파도가 바싹 서서 밀려들어오는 위협적인 상황에서 달린다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나무를 붙잡고 버티는 모습도 보였다.

1903년, 시카고의 한 극장에 불이 나 602명이 사망했다. 대부분의 사망자들은 출입구와 계단 주변에 뒤엉켜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떠밀려 압사하거나 질식사한 사람이 대다수였다. 나중에 소방수들이 시신을 가지런히 했을 때 얼굴에 찍힌 신발 자욱이 참상을 그대로 말해줬다. 사람들로 꽉 찬 극장이나 나이트클럽 같은 곳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모든 사람을 위한 제1의 해결책은 서로서로 믿고 협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희생을 최소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신뢰가 부족하면 각자는 제2의 행동을 하게 된다. 그것은 문으로 먼저 뛰어가 탈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결국엔 모두가 비슷한 시간에 문에 도달하게 되고, 각자는 앞뒤 안 가리고 문으로 돌진해 나가는 것이다. 가장 합리적으로 결정한 각자의 선택인 것이다. 많은 사상자를 낸 화재사건을 신문방송에서 보도할 때면 으레 이런 탄식이 나온다.

‘모두가 질서를 지켰더라면 사상자의 수가····.’ 하지만 생각대로 되어 주지 않는 데에 문제가 있다.

두려움도 무리 속에서 느끼면 더 큰 공포가 된다. 명절에 고속도로가 막히는 것도 마찬가지 심리다

한 외국의 TV방송사에서 영화상영 중인 극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를 가상하여 집단적 행동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불시에 연기를 뿜어 화재경보기를 울리고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 프로그램의 목적은 재난 발생 시 도우미의 효율적인 역할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실험에서 나타난 현상 중에 특이할 만한 것은 관객 출입구가 여러 개 있었고 단상 무대 양 옆으로도 출입구가 있었다. 그러나 막상 화재 경보가 울리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들어왔던 그 문을 고집하여 대피를 시도했고, 그렇지 않으면 여러 문들 중에도 유독 사람이 몰리는 문으로만 더 몰려가고 있었다. 당연히 실험에서 엄청난 부상자가 발생되었다.

이 실험 결과를 통해서 사람들의 재난 시 대응하는 심리를 엿볼 수가 있는데. 먼저 인간의 ‘귀소의식’ 즉 들어온 문으로, 다니던 곳으로만 가려고 하는 행태를 볼 수가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군중 또는 집단의식’이다. 즉 다른 대피로나 출구가 있었음에도 다수 판단을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 함께 간다는 것이다. 재난 시 동조현상, 집단전염, 행동의 맹목성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희생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재난이 닥치게 되면 그냥 멍하니 서 있거나 소리도 지르지 못한다고 한다. 충격반응 중에서 가장 흔한 반응이 정신이 나간 모습으로 멍해 있는 상태다. 지진 등으로 간신히 생명을 구한 사람들은 제대로 울지도 푸념도 하지 못하고 혼이 빠져 있다. 눈물도 잘 흘리지 못한다. 자기 자식이나 배우자가 죽었다는 등의 말을 하지만 감정이 없이 말을 한다. 이런 단계에서는 가까운 사람이 죽은 것이 대해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말을 한다.

큰 지진에서처럼 갑작스런 대규모의 파괴가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열지 못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직후에도 그런 현상이 목격되었다. “지진 직후 있었던 침묵은 지진의 그 무서운 소리만큼이나 무서웠다”고 생존자들은 술회하고 있다. 생존자들은 처음에는 천치가 된 모양 선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혹 말을 할 때는 속삭였다.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직후 피해자들은 아무 말 없이 긴 열을 지어 도시를 빠져나갔다. 마치 로봇처럼 움직였다고 한다. 폭발 중심에 있던 피폭자들의 반응은 좀 달랐는데, 귀가 멀고 눈이 멀고 신체가 찢어진 피해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도망치려고 혼신의 노력을 쏟았다고 한다.

2. 반동반응단계(the recoil reaction)

반동반응단계에서는 일단 위험에서 벗어난 생존자들은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때 이들은 킥킥 웃기도 하고, 흐느끼기도 하고, 신경질을 부리기도 한다. 때로는 화를 폭발시키기도 하고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앞서 겪었던 충격에 대한 반작용인 셈이다.

어린아이 같으면 이 단계에서 심한 의존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어머니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고 어머니와 같이 가지 않으면 학교 정도만 빼고는 아무 곳도 가려하지 않는다. 또 자다가도 일어나서 어머니와 같이 자자고 하든가 어떻든 혼자 잠들려 하지 않는다. 또 그 전에는 혼자서 잘 가거나 머물던 구석진 곳이나 어두운 곳에는 혼자서 가려 하지 않는다. 극장 같은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는 처음부터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공포자극에 대한 자극역이 낮아져서 극히 미소한 자극에도 과민한 공포반응을 보인다. 예컨대,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잘 놀란다. 또 누가 가까이 와서 몸에 손을 대기만 하면 소스라쳐 놀라기도 한다.

토네이도(강한 회오리바람)에 혼난 아이는 하늘에 구름이 조금만 보여도 학교에 가지 않으려 한다. 이런 자연적 재해를 경험한 아이는 건물의 안전에 신경을 쓰며, 물, 구름, 비, 하늘의 이상한 광선 등을 겁낸다. 장기적인 폭격에 노출된 아이는 자면서도 울든가 오래도록 울음을 그치지 않기도 한다. 오줌을 가리던 아이도 밤에 오줌을 다시 싸기 시작한다.

이런 반동반응의 강도는 몇 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데, 사고현장에 있었는지 여부, 가족 중 사망자의 여부, 자신의 부상 유무, 재난이 발발 당시 그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의 인지여부, 그리고 재난이 닥쳤을 당시나 직후에 부모가 아이에게 보인 반동여하가 반동반응의 강도를 결정한다. 아이의 경우는 이 밖에도 재난 이전부터 부모가 정신장애를 지녔으면 아이도 충격이 지난 후 정서적 장애를 일으키기 쉽다.

사람들은 위험이 지난 직후 단지 정서적 반응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행동을 하는데. 그 중에서 남을 돕기 위해서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는 용감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만 살아남으려고 비겁하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위험이 지나간 것을 깨닫고 물건에 대한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이 나타난다.

태풍 루사 때 영덕에서의 일이다. 마을에서 다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던 할머니는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우려되니 빨리 대피하라는 전갈을 행정기관으로부터 받았다. 아주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것도 한 밤중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대피를 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항상 곁에서 친구나 다름없는 TV가 생각난 것이다. 그것을 안고서 대피를 하다가 결국에는 생명까지 잃게 되었다. 대체로 심한 위험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행동하여 남을 잘 도울 생각을 하지 못 한다. 자신의 몸 하나만 빠져나가려고 기를 쓴다.

일본 나까사끼 원폭생존자 중 오직 7%만이 피폭 직후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대답했으며, 남의 도움을 받았다고 대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1912년 4월 14일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침몰 당시 구명보트에 요행히 올라탄 사람들은 구명보트가 반 밖에 차지 않았는데도 배에 기어오르려 하는 사람들을 쫓아버렸다.

사람들의 행동이 갈피를 못 잡는 듯이 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정상적인 통신 채널이 단절되기 때문에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자신에게만 재난이 닥친 것으로 착각하고 피해가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또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순간적으로 역할갈등(役割葛藤)을 경험하기 때문에 자신이 아이의 부모로서 행동해야 할지, 부상자를 돕는 의료보조원으로 행동해야 할지를 몰라 망설이게 된다. 대개는 부모로서 우선 행동하고 그 일이 어는 정도 끝나면 남을 돕는데 적극적으로 나선다.

좀 더 상황이 멀어지면 사람들 중 일부는 혼란 속에서 잇속을 차리려고 도둑질을 하기도 한다. 특히 재난의 결과로 물질적 결핍이 장기화할 경우에는 필요에 의해서 남의 물건을 훔치는 행위를 자행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독일에 대한 연합국의 대량폭격이 있을 때 준법정신이 강한 독일의 중류층의 사람들도 남의 물건을 훔치기 시작했다. 충격 직후에는 기억도 일시적으로 상실되는 경우가 있다. 일시적 기억장애가 수반되기도 한다. 조금 전에 겪은 재난을 생각해 내지 못한다.

3. 회상반응단계(the recall reaction)

마지막 단계인 회상반응단계에서는 재난생존자들은 대체로 긴장해 있고 안절부절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단계에서는 재난에 대한 무서운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또 재난에 집착해서 생존자는 자꾸 재난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당시 매몰 후 51시간 만에 구출된 생존자들 중 일부는 자꾸 건물더미에 갇혀 지낸 ‘지옥의 시간’이 자꾸 떠올라 몸서리쳐진다고 말했다. 13일 만에 이 매몰 현장에서 구출된 18세 여자는 구출 후 2일이 지난 아침에 간호사가 그녀를 깨우자 그녀는 “언니, 새벽에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 못 들었어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밤에 자다가 쿵쿵쿵 하고 천장에서 울리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곤 한다. 이 단계에서 어떤 기억을 완전히 상실하는 경우도 있으며, 대부분 생존자들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악몽에 시달린다. 또 정서적 불안정을 보이고 여러 가지 신체적 증상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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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심리적 충격과 우울을 증가시키고 사회적 집단불안을 야기한다. 특히 생명의 위협을 체험하거나 죽음 직전의 상황에 돌입했던 경험이 있던 사람은 더 큰 충격을 받는다. 이러한 충격은 지금까지 안전하다고 믿어왔던 개인의 인지의 틀이 붕괴되어 이 사회는 그 안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공포의 대상으로 변하게 된다. 따라서 재난을 직접 당했거나 목격한 사람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은 심각한 부적응증을 경험하게 되고 세상을 두려워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기피하게 된다. 재난의 충격으로 인한 문제는 PTSS(Post Traumatic Stress Syndrome)와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1871년 제이콥 다코스타는 ‘예민한 심장(irritable heart)’이라는 글을 통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과 유사한 증상을 미국 남북전쟁 중에 투입되었던 병사들에게서 관찰해 발표하였는데, 당시에는 ‘병사의 심장’이라는 이름으로 기술되었다. 정신분석학의 영향이 맹위를 떨치던 1900년대에는 ‘외상성 신경증’이라고 명명되기도 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포탄에 의한 뇌손상으로 이러한 증상이 나타났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전쟁신경증(shell shock)’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941년, 보스톤의 코코넛 그로브라는 나이트클럽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화재의 생존자들이 불안, 피로, 악몽에 시달리는 것이 관찰되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나치 강제 수용소 생존자, 일본의 원폭 생존자들에게서 유사한 증상들이 계속 관찰, 보고되면서 이러한 증상들은 전투신경증 혹은 작전 피로(operational fatigue)로 명명되어 왔다. 이러한 일련의 명명을 거치면서 베트남 전쟁 생존자들에게서 관찰된 증상들을 토대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개념 및 명칭이 정립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전쟁, 고문, 자연재해, 강간, 자동차사고, 건물이나 주택 등의 화재 등에 노출되어 생명의 위협 및 심한 공포감을 경험한 사람들 중에는 사건 후에도 계속해서 사건의 장면이 떠오르거나 악몽에 시달리고, 사건이 상기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비슷한 자극을 회피하게 되며, 과민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멍한 상태가 유지되어 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외상이 종료되고 한 달이 지난 후에도 증상이 지속되어 가정이나 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경우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의심해야 하고, 한 달 이내라면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의심해야 한다.

 

급격하고 심각한 충격으로 인한 급성스트레스 반응인 PTSS는 일반적으로 재난을 경험한 사람들이 겪는 심리적 상태이다. 이러한 반응은 정상적인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재난 체험 후 6일에서 6개월 이내에 서서히 사라지고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PTSD는 재난 발생 후 2일에서 3개월 정도부터 나타나는데 3년 이상 지속되기도 하고 보다 장기적인 문제로 남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은 재난의 심각성과 위험성 그리고 개인의 심리적 강인성과 사회적 지지 체계 등이 재난 후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질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족의 신뢰 및 결속감이 느슨하고 안정감이 적은 사람이나 재난 전의 생활이 보다 취약한 장애인, 어린이, 노약자 등이 이러한 집단에게서 더 많은 문제가 노출된다. 또한 재난 후 지원 과정에서의 신뢰와 안도감, 미래에 대한 긍정적 희망은 심각한 재난 후에도 건강한 삶으로 복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게 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증상

1. 침습적 증상

외상적 사건들이 환자의 생활 속에 침투하여 재 경험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위해서 다음 중 한 가지가 필요하다.

     - 사건에 대한 기억이 자꾸 떠올라 고통스럽다.

     - 꿈에 사건이 나타나 고통스럽다.

     - 외상적 사건이 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행동하고 느낀다.

     - 그 사건이 회상되면 심리적으로 매우 고통스럽다.

     - 사건이 회상되면 땀이 나거나 심장이 뛰는 등의 생리적인 반응을 보인다.

 

2. 회피와 무감각 증상

이 증상은 불쾌한 기억과 감정을 차단하기 위해 나타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위해서는 다음 중 세 가지가 필요하다.

     - 외상과 연관된 생각, 느낌, 대화를 피하려고 한다.

     - 외상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활동, 장소 사람들을 피하려고 한다.

     - 외상의 중요한 부분을 회상할 수 없다.

     - 중요한 활동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감소하거나 그 활동에의 참여가 현저히 줄어든다.

     - 다른 사람과 거리감이 생긴다.

     - 감정 표현과 정서적 반응이 억제된다.

     - 미래에 대한 불길한 생각을 한다.

 

3. 지나친 각성 증상

심한 외상으로 사람들은 항상 위험에 처한 것처럼 느껴 조마조마하고 경계를 하게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위해서 다음 중 두 가지가 필요하다.

     - 심한 외상으로 항상 위험에 처한 것처럼 느껴 조마조마하고 경계를 하게 된다.

     - 잠을 자지 못하거나 유지하기가 어렵다.

     - 신경이 날카로워지거나 화를 낸다.

     - 집중하기가 어렵다.

     - 위험하지 않을까 지나치게 살핀다.

     - 아주 잘 놀란다.

 

4. 기타 증상들

     - 극심한 공포반응(공황)과 불안반응

     - 우울증과 조증

     - 알코올이나 다른 약물 남용

 

2005년 미국 플로리다를 강타한 허리케인 Katrina 생존자 1,043명을 대상으로 하버드 의대에서 실시한 연구에 의하면 11.3%가 허리케인 후에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수치는 허리케인 이전의 6.3%에 비해 두 배 가량 증가한 수치다. 또한 허리케인 전의 9.7%에 비해 증가된 19.9%가 경·중증도의 정신질환을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Katrina가 강타한 알라바마,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지역에서만 약 20만 명의 사람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나 우울증 같은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존자 중 미시시피 지역의 질환자 중 50%가 악몽을, 전체 생존자 중 85%가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겪고 있고, 생존자 중 약 30%가 심각한 신체적 장애로 고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재난을 겪은 사람들 가운데 많게는 59%에 이르는 다수가 일생 동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 받을 가능성이 있으며, 어린이의 경우는 이보다 심각하여 심하면 70%가 PTSD의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특히 먼발치에서 보게 된 화산폭발이나 산불보다 자신들이 직접 경험하고 위험을 겪었던 홍수, 강물의 범람, 태풍 등이 더 큰 충격을 남긴다.

 

인위적 재난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기술적 재난의 경우에는 PTSD로 이행되는 경우가 50%에 다다르고, 대형화재에서 생존한 사람들은 60%, 화상을 입은 사람들은 거의 전수가 PTSD로 심리적인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나라의 경우 PTSD를 장기적으로 추적하여 조사한 보고는 거의 없으나 일회적으로 조사한 보고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02년도와 2003년도에 태풍 ‘루사’와 ‘매미’로 인해 수해를 입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3년이 지난 현재까지 수해를 입은 직후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보인 영동지역 주민 592명 가운데 55%인 325명이 여전히 정신적 후유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증상별로는 가슴 두근거림과 소화불량이 각각 22%로 가장 많았고 두통이 21%, 수면장애가 11% 순이었다.

 

이 조사에 의하면, 태풍 루사 당시 집이 통째로 물에 쓸려가면서 자신도 물에 빠졌던 홍모씨는 4년이 지난 지금도 환영이 보이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눈만 감으면 무엇이 잡으러 오는 것 같아 깜짝 놀라서 일어나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 태풍 ‘루사’가 지나간 1년 후 피해지역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36.9%가 심각한 정서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심리적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에서 사고 6개월이 지난 후 생존자 66명을 대상으로 심리충격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응답자의 대부분이 심각한 충격을 경험하고 있어서 심리적 지원이 절실한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다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직업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적 관계를 기피하고 있다.

 

   - 2006년 7월 강원도에 집중된 폭으로 엄청난 피해를 당했는데 재난 발생 후 3개월이 지난 10월에서 11월까지 평창 지역의 주민을 대상으로 심리적 충격 정도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를 보면 성인응답자의 77.6%, 어린의 46%가 체계적인 심리치료나 치유활동이 필요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은 재난 후에 수십 년을 함께 살아 온 이웃들이 서로 반목하고 증오하는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었다. 또한 행정기관의 지원활동도 믿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흥분하고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 5·18 광주 민주 항쟁과 관련하여 2005년에서 2006년까지 실시한 심리적 충격에 따른 후유증을 조사한 연구결과를 보면 부상자, 구속자, 유족 등 281명 가운데 32.8~40.1%가 PTSD로 진단되었다. 이는 적어도 3명 중 1명이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심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부상자들은 정당한 이유 없이 신체적·정신적 상해를 입었기 때문에 성폭력을 겪은 여성들의 PTSD와 유사할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부상자 다음으로 심한 PTSD 증상을 겪고 있는 집단은 유족이었다. 이들의 경우에도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이들의 죽음이나 주검을 목격하였기 때문에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부상자와 구속자의 1/3이 5·18 경험으로 인해 결혼에 지장을 받았던 경험이 했으며, 3/4 가까운 수가 다양한 형태의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고 하였다. 이런 결과는 5·18 경험이 정서적 불안정성, 직업적응의 어려움 및 경제적인 어려움 등을 초래하여 가족 간의 관계가 나빠지는데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재난피해자들의 생활실태 및 문제에 대한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이들에 대한 지원이 일회적으로 끝나거나 재난 당시의 피해를 복구하는데 그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재난 피해자들의 경험은 재난 이후 니들의 일상생활에서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영향을 미치며, 이는 재난 피해를 입은 개인뿐 아니라, 가족 및 지역사회에 이르기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결국, 재난 피해자들에 대한 복구와 지원은 신체적,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지원과 더불어 심리적, 사회적 지원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실시되어야 하며, 특히 재난 이후 일상생활로의 복귀와 적응을 위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재난은 재산이나 인명손실과 같은 인적·물질적 손실 외에도 재난을 경험안 사람뿐만 아니라 그 가족 및 지역사회 전체의 정신건강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지난 2003년 10월 강원도 강릉시의 한 농민이 태풍 ‘매미’로 인한 막대한 재산 피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독극물을 먹고 자살한 사건은 재난으로 인한 피해자의 심리·사회적 문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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