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이야기

KTKC 청풍님께 드린 글 ..

낙동대로263 2011. 5. 13. 17:53

 

 

 

아무 사건사고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2003년 가을이었을 겁니다.

 

17살 먹은 둘째 아들이 자꾸 체중이 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라서 말했습니다. 

너 ...  소화기에 이상이 있어서 소화가 잘 안되어 영양흡수가 잘 안되는 것 아냐 ?  병원에 가 봐. 라구요.

 

며칠 후, 병원에 갔다 온 둘째가 말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아빠를 보자고 합니다.... 

이상한데 ??  하는 예감이 들었지만 뭐 젊디 젊은 놈에게 뭔 일이 있을라구 하면서 병원에 갔지요.

 

의사선생이 말했습니다. 95% 수준의 백혈병입니다. 당장 대학병원에서 검사받고 확진을 받으세요.

예 ????   백혈병 ???????   눈 앞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죽는다는 말 아닙니까 ?

얼마나 살겠습니까 ?  하고 물었습니다.

의사선생 말하시기를 ,,,,  유전자 형이 딱 맞는 골수를 찾아서 골수이식을 못하면 길어야 5년 정도일 겁니다.....

 

대학병원에 갔습니다.  백혈병이 맞다고 하더니 당장 입원시키고 치료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답니다.

입원은 물론이고 온 집안에 비상이 걸렸고 ,, 단 하루만에 온 집안은 초상집 분위기로 돌변했습니다.

 

모든 것이 원망스럽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씨 ㅂ ㄹ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이런 일이 생겨 ?   부터 시작해서 .....  신이라는 놈은 어디서 뭘하고 있어 ?

신이라는 놈을 찾아내어 때려죽여버리고 싶었습니다.  뭐하는 놈이야 그 자식은 ?

겁나는 것도 없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그것도 막내가 죽을 판국인데 뭐가 무섭고 뭐가 겁나겠습니까 ?

 

의식과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공격적이며 비관적으로 변하더니 주변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모조리 짓밟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 새끼가 죽는 데 너거들은 왜 살아있어 ?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새끼 죽으면 말이야 .... 걸리는 것 다 죽여버리고 나도 죽으면 그만이야 ...  하는 무서운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자식의 상황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은 저에게 아무 말도 없었고 무슨 일이든 연락하기를 꺼려했습니다.

자식이 5 년 내에 죽을 판국을 맞은 부모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 

위로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제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일이라고 판단한 것 같았으며 .....  또 그게 맞지요.

혼자서 ,,,  오로지 혼자서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하는 시간이 온 것입니다.

사실, 위로하는 말도 듣기 싫었습니다.

 

둘째가 가고 없는 세상을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엄청난 상실감 ....   사용하던 책상, 옷가지, 이부자리,,,,  등등의 물건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서 ....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물건보다 훨씬 더 저를 괴롭히는 것은 둘째와 같이 한 기억이었습니다.

 

둘째와 같이 했던 시간들이 머리 속에서 휘리릭 지나가면서 ....

어릴 때의 모습, 자라면서 같이 했던 시간들 ,,

특히 가슴을 찌르듯이 아프게 하는 기억은 제가 둘째에게 잘못한 기억들이었습니다.... 

이제 갚을 길도 없고, 갚을 방법도 없을 것이며, 저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제 잘못들이 가장 가슴과 마음을 칼로 도려내듯 아프게 만들더군요 .. 

이른바, 회한이라는 감정입니다.

괴롭고 미안하고 ..............   밤이 되면 그런 회한이 한꺼번에 몰려들어서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누웠다가 앉았다가 .....   한숨을 쉬었다가 .....  눈에 살기만 돌고 몸은 엉망이 되어갔지요.

 

 

 

 

 

 

그런 내 모습을 눈치챈 의사가 정신과에 가라고 권고했습니다.

남들이 나를 볼 때,,,  내가 정신과에 가야 할 상태인가 ??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습니다.

 

며칠에 걸쳐, 그 동안 변해버린 제 모습을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집안이 내려 앉을 수도 있겠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고 ....  정신과에 갔습니다.

상담치료를 받았습니다.  더럽게 비싸더군요 ...  1 시간 상담에 15 만원을 달라고 하고 우울증 약도 먹으랍디다.

 

그렇게 약 2 개월이 지나갔습니다.

약간 안정을 되찾고 나니 ....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 저 놈과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면 받아들여야지 .... 하는 생각이 들었고 ,,,,

저 놈과 내가 참으로 우연히도 만났구나 ...  어쩌다 저 놈과 만나서 정을 쌓았을까 ? ... 하는 생각도 들었고 ,,,,

저 놈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떤 놈을 만났을까 ?    

그 놈은 먼저 가지는 않을 놈이었을까 ?

저 놈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서 친해지고 정을 쌓고 같이 살지 않는가 ?

자식이라는 놈들도 그렇게 우연히 만나서 정이 든 사람일 뿐이구나 ....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 ....  그렇구나 ....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가 나하고 우연히 만나 정이 든 젊은이구나 ....

그렇게 생각이 드는 순간  ...........  폭발하듯 울음이 터졌습니다.

 

한 없이 울었습니다....  그냥 눈물이 아무 이유도 없이 쏟아졌습니다....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흘러내리네요.

 

 

 

 

 

 

 

청풍님.

 

자식이라는 젊은 사람은 그야말로 우연히 만나서 정이 든 젊은 사람입니다.

부모와 자식 이라는 혈연에서 떠나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바라보면 우연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단지, 오랜 시간을 바라보고 서로 소통하면서 정을 쌓았기에 가슴 속과 머리속에 박힌 그 기억들이 우리를 마음아프게 하는 것이지요.

 

저는 그 때부터 아버지의 역할을 포기했습니다.

애비의 관점에서 자식을 바라보니 ....   정상적인 판단이 되어지지를 않아서 제가 살고 집안을 위해서 정신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아버지 대신 또 다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역할인지 설명 드릴만큼 정리정돈이 잘 된 감정이 아니라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아버지의 역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역할의 차이는 , 약간의 차이입니다만,,, 

그 자그마한 차이가 저의 여러가지를 바꾸었습니다.

자책하지 마시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서 우연히 만난 아드님을 위해 스스로의 역할을 다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청풍님의 지금부터의 생각과 행동이,, 

자기자신은 물론,  온 집안과 주변 사람 모두에게 끼치는 영향이 막대할 것입니다.

 

바라옵건데,,,,  부디,,,,,,,,,,,   제가 걸었던 길을 반복하지 마시고,,,,,,,,,,,,,,,, 

 

이 글을 보시고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  하는 마음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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