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 말

현명한 자가 해서는 안 될 세 가지 일

낙동대로263 2020. 6. 4. 22:52

현명한 자가 해서는 안 될 세 가지 일

 

이것은 삶의 금도(禁道: prohibited way)이자 금도(禁度: permission line)이며 또한 금도(金度: golden mean)이다. 여기서 금도(禁道)란 금지하는 일이다. 또한 금도(禁度)란 넘지 않아야 할 선(線)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금도(金度)란 황금비(黃金比)이자 중용(中庸)에 해당하는 것으로, 금도(金道)를 뜻하는 황금률(黃金律: golden rule)로 불리기도 한다. 이 모두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격언과 마찬가지로 타인을 배려하는 정신의 폭넓음과 너그러움을 가리키고 있다.

동양의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이런 높은 정신적 경지에 이른 자를 군자(君子)라고 말했고,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그의 <윤리학(Ethica Nicomacheia)>에서 '메갈로사이키아(megalopsychia)' 즉 대혼(大魂)이라고 말했다. 이 둘은 실상 같은 의미의 말이다.

 

첫째, 첨예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 이에 관련된 자는 개입에 신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양쪽의 주장을 다 들어 보아야 한다. 진영논리에 빠져 무조건 한 쪽 주장만 듣고 생각 없이 부화뇌동(附和雷同) 해서는 안 된다.

사회공동체에 몸담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가족, 친척, 친구, 조직이 있다. 따라서 타고난 정리상(情理上), 자연히 그들이나 자기가 속한 단체의 주장에 동조하고 편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세상일에서 한 편의 주장이 100% 옳고 다른 편의 주장이 모조리 틀린 주장은 드물다. 대개 7 대 3이나 6 대 4 정도며, 5 대 5로 찬반의 토대가 비슷한 경우가 많다. 양쪽의 주장을 공평하게 들어보면 나름대로 그들의 주장에 근거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빈번하다. 또한 각각의 주장을 지지하는 그들만의 증거나 논리에 결함이나 불충분함이 있음을 발견하는 일도 허다하다.

 

어떤 문제는 사실(to be)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ought to be)의 문제, 즉 진실을 가리는 문제가 아니라 가치와 선호의 문제이며, 이것들은 참과 거짓 혹은 옳고 그름이 결정되는 '사실 판단(fact judgment)'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양 측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문제가 사실상 '언어상의 논제(verbal issue)', 즉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일도 있다.

내가 여기서 황희 정승식(式)의 "너(A)도 옳고 너(B)도 옳다. 그렇게 말하는 나(C)도 옳다."라거나 '판단중지(epoche)' 혹은 무조건 중립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다. 우유부단, 눈치보기는 일견 만사형통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신과 조직 모두를 해친다.

 

인간의 행위는 크든 작든 언제나 '선택(choice)' 상황에 직면해있다. 주위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영원히 회피할 수는 없다. 우리는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외압이나 강제가 아니라 자신의 순수한 의사에 따라 골라야 만 한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J. P. Sartre)의 말처럼, "선택을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사회인으로서 공동체적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고 현실 상황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 측의 주장을 냉철히 분석하여 자신만의 판단을 내리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주체로서의 책임이 따른다. 비록 한 진영에 몸담고 있을 지라도 그네들의 주장에 잘못이 있다고 판단되면 핍박을 각오하고 과감하게 "No(아니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한갓 집단의 부속품이 아니라 독립적인 인간 존재가 내리는 자유롭고 존엄한 인격적인 행위이다.

 

둘째, 아무리 분개하더라도 상대방을 너무 심하게 욕하고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특히 상대방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를 모욕하게나 저주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욕하는 것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욕하는 것을 더욱 참지 못한다. 이것은 인간 실존(實存)의 한 조건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부부싸움을 할 때 상대방을 꾸짖을지언정 처가의 부모나 시부모를 헐뜯거나 욕지거리해서는 안된다. 이 일로 평생 원수되는 일이 허다하다. 또한 종교적 신앙을 지닌 자에게 그들이 숭배하는 신을 저주해서는 안된다. 이 경우 <악마의 시(The Satanic Verses)>를 쓴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처럼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동족과 사회집단마저 종종 타도의 대상이 된다.

 

어른에 대해 함부로 비하하는 말을 해서도 안된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자신을 낳아준 부모나 자신을 가르친 선생에게 '너', '당신', '이 새끼'하며 대들면 절대로 안된다. 이건 혈연관계나 사제관계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다.

예컨대 형제자매와 같은 여자에게 '화냥년', '창녀'같은 인격 비하적인 욕을 퍼붓지 말라. 그대의 딸이나 누이가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이 풍진세상을 살다 보면 상대방에게 이유 없이 공격을 당하는 일이 빈번하다. 반대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일도 종종 있다. 하지만 상대에게 논리와 증거에 바탕하여 정당하게 비판해야지 근거 없이 비난하거나 욕설을 뱉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주장만 밀어붙이지 말고 언제나 상대방에게 내 주장에 대한 반박이나 자기변호의 여지를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결코 지키지 못할 말, 맹세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저지른 모든 행위가 그런 것처럼 인간이 입으로 뱉은 말도 결코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발언을 취소해도 취소했다는 사실이 부가될 뿐 그 말 자체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태공망 여상(呂尙)의 고사인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즉 "바가지에서 한번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란 말이 떠오르지 않는가.

 

흥분과 분노에 치민 사람들은 이런 말을 자주 내뱉는다.

"만약 거길 간다면 나는 개새끼다!"

"그가 참말로 그런 일을 한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하늘에 맹세코 다시는 아버지 당신을 보지 않겠다!"

우습게도 (여러 이유와 변명을 늘어놓겠지만) 이런 철석같은 맹세가 번복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람의 말이 또한 인격일진대 '자기가 자기를 부정하는 것', 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개탄스러운 일인가?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철저한 행동거지라기보다 너그러운 태도와 도량(度量)이다. 분명하고 단호한 의사를 표출하되 상대방의 심중을 배려하는 부드러운 말이 당사자를 설득하고 굴복시킨다.

 

그렇다면 이런 말을 줄줄이 늘어놓는 지비는 현자나 군자인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일이지만, 난 위의 세 가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해 인생을 망친 놈이다.

그러니 젊은 서바들이여 이 꼰대 서바의 당부를 결코 잊지 마시오.

 

[출처] 현명한 자가 해서는 안 될 세 가지 일 (서바이벌 리스트) | 작성자 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