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 말

비둘기 발견 / 퍼 옴.

낙동대로263 2020. 4. 14. 21:47

보름 전,
평소 사용하지 않는 방 정면의 통창을 오랜만에 열다가 깜짝 놀랐다.
통창과 에어컨 실외기 사이에 불청객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흔히 산비둘기로 불리는 멧비둘기였다.
집 앞이 지천으로 산인데 왜 난데없는 장소에 둥지를 튼 것일까?

이곳에 4년 넘게 살며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신기함에 근접해 관찰하는데 비둘기는 도망은 커녕 눈만 끔뻑끔뻑하며 내 시선을 애써 회피한다.
나는 한동안 바라보다 실소를 남기고 창을 닫으려는 순간 바깥 상황이 궁금했는지 비둘기의 앞쪽 배 밑으로 까맣고 쪼끄마한 놈들이 꼬물꼬물 기어나왔다.  멧비둘기가 새끼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포식자와 직면하면 도망가는 게 피식자의 생존 본능인데 이놈은 본능보다 모성애가 상위하는 게 분명했다.

그 뒤 새들의 모습이 궁금해 하루 한두 번 창문을 빼꼼히 열고 조심스럽게 훔쳐보는데 흰색의 아빠 비둘기는 창문을 여는 동시에 새끼를 버리고 냅다 날아가는데 반해 회색의 엄마 비둘기는 내가 보든 말든 그저 모르쇠로 일관하며 굳건히 둥지를 지킨다.

보름이 지난 현재,
엄마품에서 꼬물거리던 두 마리의 새끼는 부모의 지극정성 덕분에 튼실하게 자라 이젠 제법 형태를 갖춘 비둘기(아래 사진)가 되었다.
나는 조만간 타도시로 삶의 거처를 옮길 예정이고 새끼 비둘기도 성체가 되면 둥지를 벗어날 터,
누가 먼저 이 집을 떠날지 모르겠지만 나나 멧비둘기 가족이나 새로운 곳에서 잘 지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