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 말

안톤 체홉

낙동대로263 2018. 4. 22. 12:08




생생한 삶을 그린 작가 안톤 체호프 


톨스토이가 19세기 러시아 문호 가운데 최대 경쟁자로 꼽은 안톤 체호프 ...

그의 단편과 희곡들은 과장되지 않은 잔잔한 삶이

아로새겨져 고요한 인생의 詩를 음미하듯 아름다움을 말한다


1860년 예술적 재능은 풍부하지만

군이었던 식료품상의 셋째아들로 태어난 체호프는

아버지의 손찌검 속에서도 낙천성을 잃지 않았으며


훗날 나의 재능은

아버지로부터 감성은 어머니로부터 타고났다 고 말했다


1879년 그는 모스코바 대학 의대생이 되었으나

파산한 아버지와 집 나간 형들 대신 생계를 꾸리기 위해

신문과 잡지에 짧은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의사가 된 뒤에도 “안토샤 체헌테” 라는 필명으로

단편을 쓰서 이름이 알려졌고 1886년 원로작가 “그리고로비치로”가

보낸 편지 한 통은 그의 운명을 바꾸었다


당신에게는 

새로운 세대의 작가 中 제1급의 작가가 될 재능이 있습니다


2년 뒤 그는 자전적 우크라이나 횡단 여행 소설

<대초원>을 펴내면서 필명을 버리고 희극 소설과도 결별한다


1890년엔 죄수들의 유형지 사할린 섬에가 감옥 제도의

실태를 조사하면서 <사할린 섬>이라는 여행을 발간한다


의료 행정관이 된 뒤 그는 멜리호보 마을에서 치료와

집필활동을 병행하며 생에 가장 창조적인 시기를 보낸다


이때 쓴 <농부들>은 기존 러시아 문학에서 보여 준 농부들의

유순하고 감상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이곳에서 쓴 희곡 <갈매기>는 1896년 초연시

관객들의 야유가 빗발쳐 공연이 중단 될 뿐 했다


마음이 상한 그는 희곡을 쓰지 않겠다고 맹세하지만 2년 뒤

모스코바 예술극장에서 재연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게 된다


1897년 3월 체호프는 20대부터 앓기 시작한

폐결핵이 심해지자 크림 반도의 해변 휴양지에 머무른다


그리고 자신의 연극에 출연했던 여배우 올가 크니퍼와 결혼하지만

아내가 배우 생활을 고집해 대부분 떨어져 살며

450통 가까운 편지를 보내며 단편 보다는 희곡 창작에 몰두한다


그러나 그의 몸은 점점 쇠약해졌고 마지막 작품 <벚꽃동산>

연습에 참여 할 때는 털외투를 걸치는 것 조차 무거워 괴로워 하다가

결국 1904년 독일의 한 휴양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극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저녁을 먹고

날씨 이야기며 카드놀이를 하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


인생은 현실 그대로 나타나야 하며 사람들도 과장이 없어야 한다 는 작품관으로

철학이 담기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가 말하는 건 미화되지도 폄하되지도 않은 생생한 삶의 현장 그 자체가 아니였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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