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 말

신념의 공해 ... 마광수

낙동대로263 2015. 11. 1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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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아저씨가 게시한 글을 퍼 옴...

 

필 아저씨 덕분에 나는 이 마광수 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차츰 매력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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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의 공해 ............................................................... 마광수

 

요즘 우리는 사회 도처에서 수없이 많은 ‘신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신문과 잡지의 칼럼난에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

이른바 ‘지식인’들의 비분강개쪼의 글과 사회비판의 글이 매일같이 실리고 있다.

 

요즘 사람들에겐 도덕이 없다고 한탄하고 정의와 윤리와 양심을 한결같이 부르짖는다.

나는 그런 글들을 대할 때마다, 도대체 얼마나 스스로의 생활 철학에 자신이 있길래

그렇게 ‘소신 있는 말’들을 척척 해댈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 의문을 느끼곤 한다.

 

소신이 서 있는 사람들은 비단 대가급(大家級) 인사들만이 아니다.

요즘의 젊은 사람들도 다 그렇다.

다 눈알이 반짝반짝 빛나고 똑똑해 보인다.

 

대학생들은 입학하자마자 졸업 후 의 장래를 ‘소신껏’ 대비한다. 연애도 술도 모르고

도서관에 파묻혀 고시(考試) 준비를 하 는 대학생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일류대학을 목표로 소신껏 공부를 해대는 고등학생 들,

모두가 스스로의 결론이 있고 출세주의적 목표에 자신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소신이 있고 지론이 있는 사람들은 많은데, 왜 사회는 날로 어두워져가기 만 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자신(自信)이 ‘가짜 자신감’이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신념의 공해를 느낀다.

 

내가 보기에 요즘 지식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융통성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철저한 아집 내지는 신념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너무나 신념과 지조에만 가득 차 있었다.

 

행동과는 애초 부터 무연(無緣)한 창백한 지식인들이 자긍(自矜)을 잃지 않으려고 잡는 최후의 거점이

바로 초속주의적(超俗主義的) 신념이다.

지식인의 선량의식(選良意識)이 투철한 사명감과 행동으로 승화되지 못했을 때,

그것은 엉터리 신념과 자기도취에 빠지기 쉽다.

그들은 즐겨 정신적인 귀족을 자처하고 대중을 속되다고 경멸한다.

남은 다 더러워도 나만은 깨끗하다는 식이다.

 

조선조 5백년을 찌들 게 만들었던 당쟁의 비극은 선비들의 명분과 신념 때문이었다.

단발령을 내렸을 때 땅을 치며 통곡하던 유생(儒生)들의 애절한 신념,

그 편협한 선비주의적 신념의 잔재가 아직 도 우리들에게는 미덕으로 남아 있다.

돌이켜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천재지변으로 인한 인류의 피해보다도 훨씬 더 참혹한 피해 가,

인간의 그것도 아주 우월하고 지적(知的)인 인간들의 ‘신념’ 때문에 빚어졌다.

 

모든 전쟁은 몇몇 통치자들과 애국적 지식인들의 신념에 의하여 훌륭한 대의명분을 갖고서 감 행되었고,

나폴레옹이 유럽을 시끄럽게 만든 것도 그의 애국적 신념 때문이었다.

 

더 나아 가 역사상 최대의 죄악인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도 따지고 보면

히틀러 자신의 신념 때문 에 감행된 비극이었다고 볼 수 있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중세기의 성직자들은 성스러운 신념을 가지고 진리를 말하는 갈릴레오를 단죄했던 것이다.

물론 올바른 신념은 확실히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자기자신에 대한 끝없는 회의와 모색 끝에 얻어진,

먼 앞날을 투시할 수 있는 바른 결단과 행동으로서의 신념이 아니고서는,

사실 막무가내의 유아독존적 신념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지식인은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단호하기 쉽다.

그리고 탐구적 방황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악(惡)과 불행은 이상(理想)의 결핍 때문에 비롯되지는 않는다.

되레 모든 악과 불행은 오로지 잘못된 이상, 잘못된 신념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