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시
나무 되신 아버지 / 유영호
낙동대로263
2019. 11. 8. 11:11
나무 되신 아버지
유영호
햇빛 가득한 거실 창가
흔들의자에 앉은 아버지는
군복에 총을 잡고 잠이 드셨다
몇 년 전 정신을 놓으시고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더니
언제부턴가 한국전쟁을 지휘하신다
아버지의 손톱을 깎아드렸다
기억은 오래 전에 토막이 나
거미줄로 흔들리는데
더 키워야 할 것이 남았는지
턱수염과 머리카락은
겨울나무처럼 무성하시다
어설픈 솜씨로 머릴 자르고
면도를 해드리니 눈을 뜨셨다
거울을 보여 드리자
아이처럼 하얗게 웃으셨다
모든 것 다 내어주어
뼈만 남은 놀이터 은행나무처럼
아버지는 의자에 야윈 몸을 심으시고
스스로 나무가 되셨다
바람은 창밖으로 부서지는데
아버지,내 안에서 흔들리신다.
#군더더기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떨어지게 되면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납니다.
면도를 해드리고 손,발톱을 깍아드리던 가을이 지나고 추위가 절정으로 치닫던 겨울 날 아버님은 나무가 되셨습니다.
그렇게 떠나신지 벌써 13년이 지났내요.
세월에 점점 무뎌진 기억이 이젠 안개속의 은행나무처럼 몽환적인 모습으로만 남아 계십니다.
집 앞 은행나무가 노랗게 부서지는 오늘, 아버지 제 가슴에서 흔들리십니다.